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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Jan 04.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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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차기 유력 대선후보 기자회견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보통 기자회견이라면 보도자료부터 미리 배포했겠지만 이번엔 사전에 어떤 정보도 흘리지 않았다. 보좌관들은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을 흔들만한 긴급 기자회견이라는 언질만 주었다. 정치거물에게서 어떤 폭탄선언이 나올지 기자들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김영주 의원은 옥색에 가까운 파란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그가 앉은 책상 위에 잡지 한 권이 놓여있었다. 내용을 알려달라는 기자들로 식전부터 회견장이 시끌시끌했다. 그럼에도 김영주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만 지켰다. 보좌관들이 합장한 손을 흔들어가며 기자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했다.


마침내 보좌관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대한자유당 김영주 의원 긴급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김영주는 말 대신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다시 떨궜다. 그가 비통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기자들은 더욱 애가 탔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앉아있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비통한 심정 이루 다 말로 형언할 길 없습니다. 어찌하여 이 정부는 국민을 감시와 속박의 대상으로만 여기는지, 어찌하여 이 정부는 이렇게 뻔뻔한지, 저는 신뢰할 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왜 이런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참 뜸을 들이다 입을 연 김영주는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서두를 뗐다. 그리고 앞에 있던 잡지를 집어 들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궁금해하시는 국민들께, 이 월간지 보도 내용을 참조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잡지가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었습니다!”

김영주가 라이프저니 10월호를 번쩍 추켜올리자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다. 장내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저는 여태껏 발생한 칩 관련 사건들이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고, 또 속박하기 위해 벌인 악랄한 범죄의 부작용이라는 것을 내부고발자의 증언으로 확보했습니다! 사건 양상이 반체제적이며 자본주의를 증오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증거입니다.”

실제로 칩 2와 관계된 사건을 일으킨 몇몇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현 정부가 왜 좌파정권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정부는 우리가 피땀 흘려 지킨 소중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빨갱이들에게 바치려 합니다! 어찌 통탄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는 드림캐리어社가 개발한 칩을 사용해 국민을 감시하고 조종하려 했습니다!”

더군다나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정부가 이미 확보했다는 대목에서 장내 소란은 절정에 달했다. 동희가 심층취재 내용에 넣지 않은 정보들을 김영주가 언론에 공개했다.


“이상이 저희 내부 고발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한 오늘 기자회견 내용입니다.”

김영주가 준비된 원고를 다 읽었다. 기자 한 명이 내부고발자 소속에 관해 질문했다. 김영주는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그전에 정부의 항변부터 들어보자고 했다.


“비록 좌파정권이지만 정부도 나름 할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감성적인 서두로 시작된 김영주의 기자회견은 칩 2 사건에 버금가는 물의를 일으켰다. 관련 내용이 단박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해킹으로 유출되었다는 이야기와 그 주체가 정부 관계부서라는 주장은 대한민국을 들썩였다. 라이프저니 10월호, 칩 2, 정부의 통제, 음모론, 뇌 해킹, 칩 부작용, 정동희 기자 등이 덩달아 검색어 상위 순위를 차지했다. 일부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김영주의 기자회견을 속보로 편성했다. 정부는 그날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다음날 정부 해당 부서는 논평을 내고 김영주의 기자회견을 막말 잔치로 규정했다. 국민이 선택한 정부를 마치 이적단체인 것처럼, 그것도 막말을 사용해 펼친 기자회견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한 편의 씁쓸한 촌극이었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 김영주 의원이 책임지고, 감시가 무엇이며, 조종이 무엇이며, 뇌를 해킹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증거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밝히라 촉구했다. 더불어 칩은 이전 정부에서 승인한 것으로 만일 칩이 대국민 염탐용으로 제작된 것이라면 당시 집권 여당 소속인 김영주 의원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또한 내부고발자는 현 정부 사람인지, 어느 단체 소속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며, 만일 김영주 의원이 한 편의 SF를 구상 중이며, 책 홍보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라면 국회의원 자질에 걸맞지 않다는 비꼼을 끝으로 논평을 마무리지었다.


김영주는 내부고발자는 드림캐리어 직원이며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해 더 이상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 또한 이 모든 내용을 알고 있지 않느냐며 시치미 떼지 말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사과와 모든 경위를 해명하라며 되받아쳤다. 그렇게 공을 다시 정부로 넘겼다. 제대로 된 사과와 해명이 없다면 그땐 분명 관련 근거를 제시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럴 경우 정부가 입을 타격은 상상 이상일 거라는 협박 비슷한 말도 잊지 않았다.


정부는 칩 2 사용을 금지시켰음에도 뜬금없고, 근거 없는, 허황된 문제 제기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정부 나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대통령 명으로 부랴부랴 드림캐리어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다수 여당의 압도적 지지로 국회를 통화했다. 정부 내 어떤 부서가 단독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재빨리 내사에 착수했다.


진상조사단이 드림캐리어社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나오미의 덩치 큰 비서였다. 그녀가 안내한 곳에서 조사단이 목격한 것은 복구 불능의 PC들과 군데군데가 빈 문서장이었다. 책임감 강한 비서는 시종 당당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대표이사가 건강을 이유로 요양 중이라는 말을 할 때 울먹이는 목소리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진상조사단이 수집한 결과물은 며칠 뒤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되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부는 칩 2 관련 사건과 무관하며 문제가 있다면 오직 드림캐리어社 단독 범행이라 선을 그었다. 국민들이 불안해할 것을 우려해 드림캐리어社에 대한 정식 수사를 요청한 상황이며, 나아가 이미 승인 취소 및 사용중지가 이루어진 칩 2에 대해 정부와 관련된 근거 없는 비방과 음모를 계속 이어갈 경우 적법한 조치를 취할 것임도 강조했다. 김영주 의원을 향해서는 대국민 불안 조성 공세는 정치인으로서 적절치 못한 무책임한 처사라 비난하며 해당행위의 자제를 요구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김영주에게 의원직을 사퇴하라 압박했다.


이번에는 정부가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였다. 김영주 측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기자들이 관련 근거 제시를 채근할 때마다 때가 되면 다 밝혀질 것이니 만일 자신이 근거 없이 지껄였다면 의원직 사퇴도 불사하겠다고 호언했다. 당시 그는 세상 이치를 터득한 도인 같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기자들 눈엔 그저 졸리는 모습이었다.


김영주 의원 기자회견은 정부의 강경한 반박으로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정치 대결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11월이 끝나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음로론은 여전히 국민들 머릿속에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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