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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Jan 12.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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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날씨가 추워진 탓일까? 출근하자마자 책상에 붙은 메모를 보고 편집장실로 간 동희는 편집장 스타일이 바뀐 것을 눈치챘다. 늘 입던 회색 청바지 대신 짙은 인디고 청바지와 가죽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동희를 보고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편집장은 어지럽게 쌓아놓은 소지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서류들을 훑어보고 상자에 담거나 찢어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부르셨어요?”

편집장이 서랍을 열고 아무렇게나 둘둘 말린 종이 뭉치를 꺼내 동희 앞으로 밀었다.


풀어봐.” 동희가 조심스레 종이를 펼쳤다. 동희 눈이 반짝였다. 두꺼운 유리가 둥근  테두리에 둘러싸여 한가운데 박혀있고 눈금들과 작은 숫자들이 앙증맞게 각인되어 있었다. 오돌토돌 엠보싱 처리된 검정 가죽이 기계 절반을 덮고 있었다. 금속 표면에 Petri Color 35라는 글씨가 음각되어있었다. 작은 필름 카메라였다. 동희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멍하니  있었다. 편집장이 그런 그의 손에서 카메라를 낚아  레버를 당기고 셔트를 눌렀다. !


필름은  들었다.” 카메라를 다시 동희에게 건넸다.


선물!”


?”


“얼마 전 외국 다녀온 친구가 준거야. 벼룩시장에서 샀대나? 가만 보니 정기자가 좋아하는 기종이더라고. 난 카메라에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아무튼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얼떨떨해하는 동희에게 편집장이 또 눈썹을 추켜올리며 다시 서류 더미로 고개를 돌렸다.


그걸 어떻게…...”


당신 책상 앞에  카메라 사진 붙어있더구먼.”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요.” 짙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 동희가 내뱉은 말이었다.


“으으, 그러니까 선물이지. 으이크!” 편집장이 쳐다보지도 않고 서류뭉치를 힘껏 찢으며 말했다.


대일밴드가 반창고의 대명사인 것처럼 동희에게 페트리 칼라 35 카메라의 대명사였다. 동희는  페트리 칼라 35 가지고 싶어 했다. 하고많은 카메라  하필 페트리 칼라 35냐고? 동희 외삼촌은 일찍 아빠를 잃은 조카를 애처롭게 여겼다. 동희 역시 외삼촌을 따랐다. 외삼촌이 하는 것이 정석이 되었다. 외삼촌은 사진작가였다. 자신이 가진 여러 카메라 동희 어린 시절을 담았다. 동희는 그중 유독 페트리 칼라 35 기억했다. 외삼촌 덕분에 아빠의 빈자리를 추억으로 채울  있었다. 하얗고 차갑고 상쾌했고, 환한 따뜻함이 푸른 시원함과 공존하는 추억이었다. 그때마다 페트리 칼라 35 동희를 보고 틱틱거렸다. 동희가 조금  컸을  외삼촌은 외국인과 결혼해 이국(異國)으로 떠났다.   , 참으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외삼촌과 서먹서먹한 대화를 페트리 칼라 35 구해주었다. 정작 외삼촌은 자신에게 그런 카메라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했다. 전문가에겐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 누군 가에겐 하나뿐인 것이 되었다. 동희는  그런 페트리를 가지고 싶었다. 그에게 페트리는 모든 추억을 소환할 부적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오래전 단종된 희귀한 기계식 필름 카메라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니고 다니면서 특종 한번 잡아봐! 혹시 알아,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될지? 나중에 나한테도 보여주고.”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무뚝뚝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마는  편집장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 그런데, 편집장님께선 정말 드림캐리어 프로그램을 정부 관계자가 유출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동희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편집장이  숨을 쉬며 동희를 불렀다.


정기자! 내가 지난번 심층취재 기사  썼다는  했던가? 고생했고, 앞으로도 수고해 . 내가 없더라도 기자의 본분을 잃지 말도록! 그리고  문제는 수사가 진행 중이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거야. 우린 기자지 탐정이 아니야. 섣불리 나서다가 잘못하면 다칠  있어. 하지만 언제나 사태를  지켜는 보도록!” 동희는 말없이 편집장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이번엔 양쪽 눈썹을  번씩이나 올렸다 내렸다 했다. 언제 보아도 재미있고 친근한 인상이었다. 손에  카메라로 편집장의 여러 표정을 찍어 선물하고 싶었다, 언젠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할 것이다. 편집장실을 나서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자리에 앉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의  심층취재 이후 사무실 분위기가 뒤숭숭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세상이  나아 보였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같았다. 사무실  계단참에서 선배  명이 잡담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더니 진정한 사랑을 찾은 거지.  예쁘장하기라도 하지.  느끼한 털보는 뭐냐? 생각만 해도 우웩!” 동희가 있던 말든 아랑곳 않고 킬킬거렸다. 대번 자신과 편집장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있었다.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이, 정기자! 취재 나가나?” 동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입꼬리를 올리며 콧바람을 내뿜었다.


어쭈! 많이 컸다!”


개나 소나  하면 우린 뭐냐!”


“거꾸로 돌아가는 거지!” 뒤에서 떠드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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