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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잊고 지내던 이들이 소식을 전해오기 마련이다. 무명 잡지사 일개 막내기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기사를 접한 많은 지인들이 안부를 물어왔다. 그중엔 성 프란시스 병원의 레지던트도 있었다. 라이프저니 10월호가 출간되고 한 달이 훨씬 지난 11월 중순이었다. 기사 말미에 달린 동희 이메일 주소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 프란시스 병원에 근무하는 고희권이라는 의사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동희 님이 맞는지,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메일 드립니다. 저는 거산중학교 36회 졸업생이며, 거산고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만일 저를 알아보신다면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정동희 님이 아니시더라도 기사 관련 제보 사항이 있으니 한번 뵈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희권 드림 (연락처: 010-XXX-XXXX)
동희는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희권에게 전화했다. 오래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한동안 흐들갑을 부렸다.
두 사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2년을 함께 다녔다. 희권은 잘 나가던 아버지 사업 덕에 풍족한 삶을 살았다. 인정 많은 그는 친구들이 많았다. 동희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새 둘은 단짝이 되었다. 방학이면 희권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두 사람 다 중학교와 한 재단에 속한 고등학교로 입학했다. 1학년까지도 사이가 좋았다.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리며 조금은 서먹해졌다. 그렇게 2학년이 끝나갈 무렵 희권이 학교를 결석하는 날이 잦았다. 집은 이사 갔고 연락은 닿지 않았다. 3학년이 되고서야 희권이 전학 갔다는 사실을 들었다. 누구도 그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다. 메일도 허사였고 친구 찾는 사이트를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며 잊혔다.
“내가 너 얼마나 찾았는데……” 동희가 말했다.
“그러게, 내가 진작에 연락했어야 했는데……” 희권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튼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보고 싶다! 내가 다음 주 초까지 정신없을 거야. 그 후에 만나면, 어때?”
“좋아!” 동희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때 그 친밀감이, 친형제보다 짙었던 우정이, 무슨 짓을 해도 이해해줄 것 같던 막역함이 다시 살아남을 느꼈다. 만났을 때 함께 곱씹을 추억이 필요했다. 그게 없다면 서먹서먹할 것이다. 다음 주, 희권이 여유 있을 때까지 잊고 있던 추억들을 꺼내면 된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사춘기를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이 반가움과 설렘 속에 뒤죽박죽 되지 않도록 머릿속에서 차근차근 정리할 시간이 그 정도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