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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Jan 19. 2022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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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동희는 집이라는 곳에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동네 찜질방에서 잤다. 휴대폰 전원은 진작에 꺼두었다. 다음날 근처 재래시장에서 후드가 달린 재킷과 배낭, 등산화, 야구모자를 샀다. 그 차림으로 잡지사 근처까지 왔다.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볐다. 사무실 맞은편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사무실이 있는 건물 입구를 살폈다. 별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에 두고 온 노트북이 필요했다. 커피숍 사장의 전화를 빌려 사무실로 전화했다. 마침 경리와 회계 업무를 보는 직원 받았다. 누나 같은 직장 선배였다. 15분쯤 뒤 그녀가 동희 말대로 노트북을 쇼핑백에 넣어 커피숍으로 가지고 왔다. 노트북을 꺼냈다. 쇼핑백엔 노트북 대신 배낭 속에서 꺼낸 전날 옷가지를 담았다. 노트북이 들어있던 때와 겉으로 보기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선배, 그냥 제 자리에 가져다 놔주세요.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당분간 전화도 못 받고 사무실도 못 가요.” 사려 깊고 침착해 보이는 그녀는 동희가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동희가 주문해둔 음료를 받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미소 지었다. 한 손엔 캬라멜 마키아또를,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들고 자연스레 커피숍을 나섰다. 나서기 직전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동희는 서둘러 노트북 전원을 켰다. 회사 메일은 지정된 PC에서만 사용하도록 설정되었다. 자신의 노트북 이외 기기로는 메일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적어도 동희 실력으론 그랬다. 그래서 이 난리를 쳐가며 전장(戰場)을 다시 찾은 것이다. 커피숍 와이파이 망을 이용해 메일에 접속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익명의 발신자가 보낸 대정부 선전포고문에 간단한 설명을 달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언론사로 전송했다. 수신함에 든 모든 메일을 삭제했다. 곧바로 노트북 전원을 껐다. 이제야 자기편이 정장들보다 머릿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희는 곧바로 커피숍을 나섰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근처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사람은 저마다 특유의 걸음걸이나 동작이 있다. 가능한 평소 자신과 다른 몸짓과 걸음걸이를 생각했다. 지나치는 건물마다 쇼윈도를 힐끔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정장 차림 사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 건물 유리 벽면에 자신 뒤로 다가오는 정장 2명이 비쳤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다. 움직임이 낯익었다. 동희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림자처럼 이들도 빨라졌다. 동희는 지하철 역이 아니라 낮고 허름한 동네를 향해 뛰었다. 역시 이들도 뛰기 시작했다.


작은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넜다.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동희 눈에 ‘綠洲‘가 양각된 간판이 보였다. 주인 아들이 가게 문 앞에서 입간판을 힘겹게 옮기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헐떡거리며 달려오는 등산복 차림 동희를 단번에 알아보고 주인 아들이 인사했다. 동희는 그 순간 비로소 그가 누굴 닮았는지 알아냈다. ‘토트’였다. 영화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를 쫓아다니며 야훼의 성궤를 열게 하는 독일인 토트! 서양인과 동양인의 인종적 차별성을 차치한다면, 동글동글한 얼굴에 들창코, 짓궂은 웃음, 둥근 안경, 손바닥에 화상을 입고 찡그리던 표정이 영락없는 토트였다. 인디아나 존스처럼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이것을 생각해낸 자신이 대견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주인 아들이 무언가 말하려 했다. 동희는 미소만 흘린 채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정장 사내들도 가계로 달려왔다. 주인 아들이 입간판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가 가계 안으로 들어가려는 정장들을 입구에서 막아서는 꼴이 되었다. 정장 하나가 가슴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인 아들에게 내밀었다. 주인 아들이 그것을 볼 여유도 주지 않고 정장들은 그를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개시 아냈는데……” 정장들 뒷모습을 보며 주인 아들이 중얼거렸다, 어눌한 말투로. 이들이 가계 안으로 들이닥쳤을 때 주방장이 홀에 나와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그곳에 없었다.


“당신들 누구야!” 네모난 칼을 높이 쳐든 대머리 주방장이 험한 표정으로 큰소리쳤다. 짙은 눈썹과 넓은 콧구멍을 가진 주방장이 휘두르는 칼을 본 정장들은 잠시 주춤했다. 조금 전 주인 아들에게 내밀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내밀었다. 주방장 눈이 게슴츠레해지더니 순순히 그들 앞에서 물러섰다. 정장들은 모든 권한을 가진 듯 식당을 제집처럼 휩쓸었다. 잠시 뒤 정장 하나가 소리쳤다.


“밖으로 도망쳤다!” 모든 정장들이 열린 뒷문 쪽으로 몰려갔다. 문 밖 5m쯤에 동희가 버린 배낭이 떨어져 있었다.


“배낭을 버리고 달아났군! 빨리 인근을 수색해봐!” 정장들이 식당에서 멀어졌다. 주방장이 뒷문을 잠그고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동희가 창백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주인 아들이 동희를 테이블에 앉히며 따뜻한 차를 따라주었다. 동희는 공무원을 사칭한 조직 폭력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둘러댔다. 주인 아들이 동희를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동희는 가야 할 곳을 이미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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