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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Nov 20.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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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월간 라이프저니 매거진 사무실

 

타닥타닥 타다닥 달그락 타닥

스물아홉. 독신. 남자. 저널리스트. 입사 2년 차. 정동희.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이일 저일 하다 결국 작은 잡지사에 취직.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냈다. 자신을 반겨줄 반려자나 반려동물이 없는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잠만 잤다. 적당히 큰 키, 알맞은 체격, 희고 갸름한 얼굴, 지적으로 보이는 단정한 몸가짐,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예쁜 언어를 구사하고, 무엇보다 기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타타닥닥 타닥

매달 이슈들을 모아 다음 달 초 발행하는 월간 라이프저니.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사건을 심층취재 형식으로 다루고 부속기사들로 남겨진 지면을 채워왔다. 페미니즘을 다룬 적도 있고 명상을 다룬 적도 있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을 때는 소속 기자들이 제안한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대부분 인문학 전공자인 이들은 사회현상에 대한 색다른 시점을 제시하려 했다.


‘현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점’

월간 라이프저니의 모토였다.

매월 25일경부터 며칠 동안 모든 직원이 - 전 직원이래야 8명이 전부였다 - 밤을 새우며 부산을 떨었다. 소란스러운 마감이 끝나면 사무실은 깊고 푸른 심해 속처럼 조용해졌다. 동희도 마감 뒤 하루 이틀은 술을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 있음을 즐겼다. 그게 다였다. 축제가 길어지면 죄책감이 들었다. 이틀간 축제를 끝낸 그는 조용한 사무실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무언가를 하며 보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찾아 들추고, 비추고,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가 짧았다. 가끔은 현실에 대한 객관적 보도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사를 쓰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특정 세력에 붙어 그 세력이 원하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믿도록 썼다. 동희는 객관성을 상실한 언론인을 증오했다. 스스로는 증오라 생각했지만 그 감정은 안타까움에 더 가까웠다. 오랜 기자 생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변한 사람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신출내기들까지 거드름을 피워가며 진실을 호도하는 꼴은, 솔직히 역겨웠다. 하늘에서 불벼락이 내려와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날, 나그네로 변장한 신(神)들이 찾아온다. 자기들끼리 탐닉에 염증 난 소돔 남자들이 처음 보는 외간 남자들과 벌일 육체적 쾌락을 위해 그들이 머문 집으로 몰려들었다. 몰려든 이들 중엔 아이들도 있었다. 동희는 변질된 인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마 라이프저니는 조금 달랐다. 수익 구조는 여느 잡지사와 같았지만,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는 편집장 겸 대표는 기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다독였다. 기자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날 선 비판이 독려되었다. 동희가 라이프저니를 택한 이유기도 했다.

 

타닥타닥 타다닥

그 시각 동희는 노트북 자판을 필요 이상으로 꾹꾹 눌러가며 며칠 전 발생한 K社 9시 뉴스 난동 사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전직 드림캐리어社 연구원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두피에 드림캐리어社에서 개발한 칩 2가 박혀있었다. 그동안 몇 건의 칩 2 부작용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칩 2가 전직 연구원 머리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드림캐리어社는 퍼펙트 드로잉 시리즈로 유명해졌다. 매그니토 헬멧처럼 생긴 이 제품은 사용자의 뇌파를 읽어 머릿속 이미지를 연결된 모니터에서 시각화시켰다. 말이나 글 없이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며 언론이 호평했다. 첫 출시된 그 해, 아이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선물이 되었다. 아이들이 초능력 헬멧이라 부른 이 제품은 총 네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최종 모델조차 외형을 빼면 기능면에서 최초 모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때 관심을 끌던 퍼펙트 드로잉 헬멧은 점차 인기를 잃다 시장에서 사라졌다.


몇 년 후 드림캐리어社는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엔 장난감이 아니라 의료기구 제조와 백신 개발을 병행하는 의료장비 제조업체로 바뀌어 있었다. 원인 모를 만성 두통에서부터 자율신경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고혈압, 파킨슨씨병, 알츠하이머, 조현병 심지어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의 난폭한 성질까지 조절 가능한 - 그들은 그렇게 광고했다 - 의료용 바이오 칩을 출시했다. 인간의 두개골과 두피 사이에 삽입하는 쌀알 크기의 칩이었다. 거창한 이름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칩’이라고 불렀다. 임상실험 단계부터 논란 있었다. 삽입방법을 문제 삼은 언론은 베리칩의 현실화라며 불안한 여론을 조성했다. 특히 종교계의 반발이 심했다. 정신적 고통은 고매한 인격 완성의 불가분 요소라는 주장을 펼치며 고통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칩이 가져올 인간 품격 저하를 우려했다. 고상한 품격이고 나발이고 오랫동안 해당 질병을 앓아온 사람들은 며칠만이라도 고통 없는 삶을 원했다.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았다. 칩의 임상실험이 승인되고 보호자 동의 아래 중증 조현병 환자의 두피부터 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칩은 얼마 뒤 일선 의사 처방만으로 사용 가능한 의료기기가 되었다. 그 뒤로 6년이 흘렀다.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얼마 전 업그레이드되며 출시된 칩 2였다.


칩 2의 부작용은 대부분 환청, 환각이었다. 가끔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작용에 시달리던 사람들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K社 뉴스 난동 사건을 일으킨 전직 연구원조차 정황상 칩 2 부작용으로 볼 수 있었다. 잠잠하던 언론의 호들갑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부가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칩 시술을 강행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여론은 제조사인 드림캐리어社보다 칩을 승인한 정부를 탓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희생자들은 제조사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했다. 대통령 임기를 1여 년 남긴 시점에 여야 차기 대선후보들 간 날 선 공방이 오갔다. 정부는 칩 2 추가 시술 금지를 염두에 두고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이 와중에도 드림캐리어社는 아무런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다. 아직까지 어떤 언론사도 드림캐리어社 취재에 성공하지 못했다.

‘칩 2의 업그레이드된 성능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출시하면서 문제가 생긴 걸까? 더 개선된 성능이란 어떤 기능일까? 드림캐리어사를 한번 찾아가 보면 좋겠는데……’

동희가 생각했다. 칩 제조사를 찾아가 보지도 않고 해당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피투성이 얼굴로 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던 연구원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까지 머리가 짜릿해지는 것 같아 뒷덜미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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