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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Nov 22.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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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탁……, 탁……,

라이프저니 사무실이 있는 15층 빌딩은 도심 끝자락에 자리 잡았다. 지은 지 20년은 훌쩍 넘었지만 몇 년 전 그럴싸한 리모델링을 했다. 10층에 위치한 라이프저니 사무실 한쪽 벽은 통유리였다. 이 통유리 창을 통해 화려한 도시 야경과 어둑한 미개발 지역이 동시에 보였다. 한쪽 귀퉁이에 편집장실이 있었다. 투명한 칸막이를 둘러 내부가 훤히 보였지만, 방음 덕에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탁……, 탁……, 탁……,

이응천 편집장은 콘크리트 벽을 맞고 튕겨 나오는 빨간 고무공을 잡아 다시 던졌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탁! 공이 벽을 때릴 때마다 편집장 오른쪽 눈이 움찔거렸다.

키 186cm, 몸무게 80kg 남짓, 머리카락은 짧고 구불거리고, 3~4일 정도 자란 구레나룻이 늘 얼굴 반쪽을 덮고 있었다. 테가 둥근 안경을 끼고, 이야기할 때 가끔 오른쪽 눈썹을 씰룩 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30대 반이었지만 더 나이 들어 보였다. 회색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아디다스 칠레 62만 신고 다녔다. 회색과 네이비가 어우러진 목도리를 두르고 삼선 저지를 걸친 모습은 히스테리컬 한 편집장보다 여유로운 예술가에 가까웠다.


탁……, 탁……, 탁……,

라이프저니 판매 부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태 광고 의뢰가 중단된 적은 없었다. 시내 끝자락이기는 하나 그럴싸한 빌딩 로열층에 자리 잡은 사무실 임대료 또한 걱정한 적이 없었다. 8명의 직원은 매달 정해진 날에 꼬박꼬박 급여와 상여금을 타갔다.


‘빌딩 실 소유주가 편집장이다’

‘편집장에게 엄청난 재력가 부모가 있다’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편집장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몇 년이나 함께한 사무실 직원도 편집장을 잘 알지 못했다. 그에게 믿을 구석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인지도 낮은 잡지사가 그처럼 잘 굴러갈 리 없었기 때문이다.


편집장은 대표이면서도 기자들을 대할 때 늘 조심스러워했다. 가끔씩 기사 수정을 요구하는 편집장 지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럴 때 편집장은 한발 물러나며 더 이상 자기 생각을 관철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 점을 활용했다.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맘껏 보도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하면서 편집장을 우습게 보고, 시기하고, 무언가 흠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집장은 실없는 농담으로 스스로 흠 될 일을 만들곤 했다.


‘부모 잘 만난 무능한 편집장은 큰소리치는 사람에게 겁먹는다’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동희만은 동의하지 않았다. 편집장 얼굴에 가끔씩 비치는 우울한 낯빛을 그는 읽었다.


탁!

공 던지는 짓을 그만둔 편집장이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개발 지역에서 올라오는 어둑한 불빛이 눈동자에 비쳤다. 가녀린 불빛들이 편집장을 불렀다. 고무공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신고 있던 크록스를 칠레 62로 갈아 신었다. 삼선 저지와 목도리를 집어 들고 유리문을 열었다. 동희 뒷모습이 보였다.


“일이 많아?”

“뭐…… 집에 가도 할 일도 없고요.”

“더 있을 거야?”

“조금만 더 있다가 가려고요. 먼저 퇴근하세요.”

편집장 눈이 동희 주변을 훑었다.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몇 장이 칸막이에 붙어있고, 책상 위에는 미처 서랍에 넣지 못한 칫솔, 치약, 반쯤 먹다 남은 초코바, 비타민 몇 알이 굴러다녔다. 흩어져있는 4 용지 사이로 책 한 권이 숨어있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이지 스톤!”

편집장이 집어 든 책을 펄럭거리며 중얼거렸다. 49페이지 윗부분이 삼각형 모양으로 접혀있었다. 편집장을 올려다본 동희가 입 꼬리를 올렸다. 책을 내려놓은 편집장이 동희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 잔 할래?”

“지금요?”

“응!”

“……”

“가자, 가자!”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편집장은 어린애처럼 졸랐다. 동희는 입을 꾹 다물고 노트북 전원을 껐다. 일어나 의자 뒤에 두른 검정 가죽 재킷을 집었다.


불 꺼진 사무실이 마감이 끝난 때처럼 짙고 푸른 심연으로 채워졌다. 사무실을 벗어난 두 사람은 축축한 도로를 걷고 있었다. 저녁 내내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그때쯤엔 그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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