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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큐멘투니스트 Nov 24. 2021

(소설) 꼬뮤니까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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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관통하는 작은 하천에서 밤안개가 피어올랐다. 사무실을 나선 편집장과 동희는 하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다가갔다. 안개를 뚫고 다리를 건너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 걷던 높고 세련된 거리와 정반대로 낮고 투박했다. 미개발 지역이었다.


도시가 저 멀리 보일 때 이곳 사람들은 벼농사를 짓고 배나무를 키웠다. 점점 자라던 도시가 하천을 경계로 성장을 멈췄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40여 미터 콘크리트 다리 두 개가 미개발 지역과 도심을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몇 해전부터 이곳도 개발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도심이 자신들을 빨기를 기대하며 터전을 지켰다. 사람들은 이제 농사 대신 다리를 건너오는 직장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팔았다. 직장인들은 세련된 도시 주점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 주점을 좋아했다. 돈을 꽤 번 가게는 간판을 바꾸고 이곳저곳 치장했다.


허름한 기와지붕에 작은 태양광 패널을 올린 식당이 있었다. 배 농사짓던 시절, 출하를 기다리는 배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2년 전쯤 화교 모자가 이곳에 양꼬치집을 열었다. 나무간판에 한자로 ‘綠洲’라 양각되어있었다. 가끔 손님들이 의미를 물을 때, 주인 아들은 ‘오아시스’라 답했다. 사람들이  양꼬치집 이름치곤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할 법도 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편집장 말마따나 ‘삭막한 도시라는 사막이 주는 갈증을 해갈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라는 것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편집장과 동희를 본 주인 아들이 했다. 주인 아들은 한국말이 서툴렀다. 작은 키에 호리호리한 그는 자기 어머니보다 머리통이 작았지만 영리했다. 안경알 너머로 반짝이는 눈빛이 호기심과 장난기로 가득했다. 동희는 매번 그를 볼 때마다 영화 속 누군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식당 안 테이블이 손님들로 거의 다 차있었다. 사투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꼬치 타는 냄새가 시큼한 고량주 향기와 어울려 돌아다녔다. 편집장이 늘 앉는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주인 아들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뭐를 좀 드릴까요?”

“지난번 그걸로 줘봐요. 마라탕 괜찮지? 양꼬치도 좀 주시고.”

편집장은 주인 아들과 동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술은요? 맥주? 고량주?”

“둘 다.”

 

동희 시선이 주인 아들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장과 이야기를 마친 아들이 주방을 나와 자신 어머니 옆에 앉았다.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며 해바라기씨를 우물거렸다. 가끔 ‘퉤’ 소리를 내며 껍질을 뱉었다. 동희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지었다. 무안해진 동희가 시선을 나무기둥으로 옮겼다.


이 식당에 들어서면 맨 먼저 천정을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 2개가 보인다. 하나는 입구 쪽, 나머지 하나는 주방 가까운 곳에 있다. 2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열서너 개 테이블이 포진해 있고, 테이블마다 양꼬치 화로가 있다. 화로에는 양꼬치를 얹을 수 있는 철망이 설치되었고, 철망은 전기모터의 힘으로 양꼬치를 회전시켰다. 주방 가까운 기둥 뒤 테이블은 -지금 편집장과 동희가 앉아있는- 사람들이 일부러는 앉지 않았다. 앞을 막고 있는 기둥 때문에 갑갑했고 옆에 있는 오래된 업소용 냉장고 때문에 시끄러웠다. ‘웅’하는 소음은 예민한 사람들에겐 여간 참기 힘든 고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냉장고와 나무기둥이 막아주는 덕에 은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편집장은 늘 이 자리에 앉았다.


냉장고와 주방 사이로는 화장실 가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냅킨이나 대나무 꼬챙이가 든 상자와 빈 병을 담은 플라스틱 음료 박스가 벽을 따라 쌓여있었다. 손님들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냉장고 앞에서 주방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야 했다. 좁은 통로 끝에 문 2개가 보였다. 오른쪽 문을 열면 화장실이고 정면에 있는 문을 열면 밖이 나왔다. 식당 비상구 역할을 하는 뒷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특성은 주인아주머니를 불안하게 했다. 아무도 무전취식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손님들이 화장실을 갈 때마다 긴장했다. 나올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쪽으로 슬금슬금 갔다. 대부분은 문 밖에서 담배 피우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고객들을 빤히 바라봄으로써 그들을 불편하게 했다. 어떤 손님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했다. 저 문 좀 막아버리자고 중국말로 호소할 때마다 아들은 소방법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동희와 편집장이 앉은 곳에서는 주방 내부도 잘 보였다. 하얀 김 속에 민머리 주방장과 눈이 마주친 편집장이 손을 흔들었다. 험상궂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심 좋은 주방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찬 맥주가 동희의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양꼬치는 톱니바퀴를 따라 열심히 움직였다. 따뜻한 계란탕이 맥주가 식혀놓은 식도를 다시 데웠다. 동희 얼굴이 화로에서 올라온 열기와 따듯한 국물로 발그레해졌다. 편집장이 입 꼬리를 올리며 동희 빈 잔을 채웠다.


근처에서 욕설이 들렸다. 남자 셋이 앉은 테이블이었다. 처음엔 회사 욕을 하다가, 정부를 욕하더니 검찰과 사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많이 취해 있었다. 욕한 사내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옆에 앉은 사내가 욕한 사내 등을 쓰다듬었다. 마주 앉은 사내는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갔다. 등을 쓰다듬던 사내도 그를 따라 좁은 통로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사내는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무기둥에 가려진 동희 얼굴 반쪽이 보였다. 동희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다시 고개를 흔들어댔다. 편집장은 뭐가 재미있는지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어댔다. 평소 편집장은 조용했다. 조용히 있으면 진중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가끔씩 분위기에 맞지 않는 농담을 하거나 별로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웃곤 했다. 그럴 때 주변 사람들은 당황했다. 동희는 이런 편집장 모습에 익숙해졌다. 과장되게 웃는 모습이 외삼촌을 떠올리게 했다.


주인 아들이 김이 오르는 대접을 접시에 담아 들고 왔다. 대접을 테이블에 내려놓자 하얀 김이 동희와 편집장 사이를 갈랐다. 그때까지 웃고 있던 편집장이 맛을 보고 주인 아들이 가져다 놓은 얼얼한 기름을 더 따라 부었다. 다시 맛을 쩝쩝대고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편집장은 특이한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꺼려하는 향이 강한 음식을 유독 좋아했다. 리코리 젤리, 루트 비어 같은 탄산음료, 베트남 국수 엄청난 양의 고수까지. 특이한 음식에 도전하고, 집착했다. 자신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나마 과시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마라탕에서 더 이상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양꼬치를 씹고 있는 동희를 보고 편집장이 말했다.

“드림캐리어 대표가 우리 잡지사와 인터뷰하기로 했다는 말, 내가 했던가?”

“드림캐리어요?”

“응, 그리고 다음 달 드림캐리어 특집에서 심층취재 파트를 정기자가 맡아줬으면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이제 그럴 때도 됐잖아. 그래서 말인데,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다녀왔으면 하는데, 드림캐리어 대표 인터뷰 말이야.”

취기가 오른 동희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K社 방송사고로 논란의 정점을 찍은 드림캐리어. 어떤 언론사도 취재에 성공하지 못한, 온갖 억측에도 아무 대응 없던 드림캐리어가 작은 월간지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다음번 라이프저니는 드림캐리어 독점 취재로 내용을 채울 것이다. 더군다나 심층취재는 막내 기자가 맡을 것이다. 편집장은 지금까지 선임 기자들이 맡아온 라이프저니 심층취재 영역을 입사 2년 차 동희에게 맡기려 했다.


동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맥주를 마시고 까맣게 탄 양꼬치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사각거림이 귀를 울렸다. 마라탕 국물을 한술 떴을 때 기침이 났다. 혀가 얼얼했다. 그제야 양고기에서 우러난 쓴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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