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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Dec 29. 2023

책이 금지된 사회가 된다면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올해가 가기 전에 딱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꼭 읽겠다고 다짐했던 책이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다. 도담서가에서 디스토피아 시리즈를 준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라고 할까.


 디스토피아라고 하면 다양한 형태의 암흑세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이 책은 책이 금지되어 버린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책을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자 독서는 범죄가 되는 사회.


 화씨 451의 주인공 가이 몬태그는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책을 소지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출동하여 등유를 붓고 소각하는 일을 해오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낀다.


 몬태그가 어딘가 잘못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음을 깨우치게 해 준 핵심인물은 이웃의 소녀인 클라리세였는데 남다른 생각과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는 사실 텅 비어져가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한 진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실 숨겨진 책을 찾아 빼앗고 불태워서 점점 실존하는 책이 사라져 간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클라리세가 사라져 버린 날, 그녀가 죽었을 거라 암시되던 부분에서 가장 절망을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답답함에 분통을 터트렸는데 나를 화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벽면 TV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아내 밀드래드였을까. 정부에 충성하고 몬태그의 집마저 불을 지르던 소방서장 비티였을까. 그도 아니라면 책을 빼앗기느니 책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던 한 늙은 여인에게서였을까.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다른 점이라면 이 책은 정부가 아니라 '개인'이 시발점이 됐다는 거다. 책을 읽지 않고 거부하는 개개인.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책을 금지시켜도 반항은커녕 거리낌 없이 순응하는 그들이 곧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완결에 다다를수록 한 줄기의 희망을 보게 된다. 물론 암울하지만,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밝은 결말은 아니지만 엉망진창 어두운 세상 속에서 피어나는 한 가닥의 빛을 보기 위해 나는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는다.


 물리적인 책은 사라지더라도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남는다는 것.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책의 일부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것은 잊히기도 하고 와전되기도 하고 손실되기도 하겠지만 끝끝내 후손에 후손을 거치며 전해질 것이다.


 불태웠어야 했을 책 한 권을 훔쳐낼 때의 조마조마함도 로봇개에 쫓겨가며 도망치던 긴박감도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며 해소되었는데 몬태그와 생존자들이 지켜낸 건 우리가 아는 책 그 이상의 개념이 아닐까.


 처음 소설의 제목을 봤을 때 이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화씨 451은 섭씨 233도로 종이가 불타기 시작하는 온도를 뜻한다고 한다. 뜨거운 화염에 태워진 잔해를 보며 우중충한 기분만 남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태울 수 없는 것들을 지켜보며 힘을 얻은 기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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