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의 기억

가두는 벽이 아니라, 지켜주는 품.

by dodamgaon

앞니 두 개가 빠진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그 앞에는 아빠와 엄마가 서 있었다.


아빠는 단단한 울타리 같았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돌아와도, 아이를 등에 업고 집 앞 골목을 걸어주던 사람.
아빠의 어깨는 울타리보다 더 높고, 더 든든했다.
그 어깨 위에 앉으면, 세상이 아무리 커도 두렵지 않았다.


엄마는 포근한 울타리 같았다.
비 오는 날, 젖은 신발을 벗겨 주며 “괜찮아” 하고 웃던 얼굴.
잠든 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던 손길.
그 손길은 꽃이 핀 담장처럼 아이의 꿈을 감싸주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울타리는 오래되었지만 묵묵했다.
무릎 위에서 들려주던 옛이야기,

서툰 걸음을 잡아주던 손길.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 울타리는 가장 오래 아이 곁에 서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햇살이 따뜻했고, 바람은 잔잔했다.

세월이 흐르자,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울타리 밖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빠의 말은 점점 잔소리처럼 들렸다.

“공부 좀 해라, 늦지 마라.”

그 모든 말이 벽처럼 앞을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엄마와는 잦은 다툼이 이어졌다.

“왜 맨날 내 방에 들어와?”
“넌 아직 어려서 그래.”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방문은 쾅하고 닫혔다.
엄마는 울타리처럼 곁에 서 있었지만, 아이는 그 울타리를 답답한 굴레로만 여겼다.


고등학생이 되자, 울타리 밖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졌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아빠의 눈빛을 피했고, 엄마의 말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울타리는 더 이상 따뜻한 품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차가운 철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는 울타리 너머로 떠났다.
멀리멀리 나아가며, 이제는 자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바람이 거세고, 비는 차가웠다.
일터에서의 하루는 거칠었고, 사람들의 말은 돌처럼 무거웠다.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의 울타리가 떠올랐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돌아와도 아이를 업어주던 그 어깨.

엄마의 울타리도 떠올랐다.
젖은 신발을 벗겨주던 손길,
잠든 밤마다 이불을 덮어주던 따뜻한 손.

그리고 오래된 울타리.
무릎 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울타리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으리라.

그제야 알았다.

울타리는 나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져도 나를 붙잡아 주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란 걸.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되었다.

결혼할 사람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의 미소가 보였고, 엄마의 눈물이 보였다.
울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도, 그녀도 부모가 되었다.
작은 손이 자신의 손을 꼭 잡는 순간, 마음을 깨달았다.


이제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 작가의 말
울타리는 우리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져도 붙잡아 주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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