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집
소중한 물건이라...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런데 굳이 하나 꼽으라면,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 집?
매일 쓸고 닦고, 우리 가족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이 집이 지금 내겐 제일 소중하다.
강사님이 소중한 물건 하나 소개하라고 하셨는데, 집도 물건으로 쳐도 되려나?
대출 갚아가는 중이라 사실 정확히 말하면, 작은방 한편 정도만 진짜 내 집일 수도 있다.
나머지는 은행 거...
생각해 보면 자가인 지인네 집에 가면 꼭 하던 말이 있다.
“현관만 우리 거야~”, “화장실만 우리 거지~”
이런 말들을 내가 하는 걸 보면, 나도 대출 노예 대열에 본격 합류한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해야 하는 건지, 씁쓸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집에 이사 오면서, 내가 꼭 갖추고 싶었던 세 가지가 있었다.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그리고 용량 큰 멀티 오븐!
신혼 때 산 냉장고는 그대로 들고 왔고, 이사 오며 세 가지는 기필코 장만했다.
로봇청소기는 저가형이라 그런지, 무조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처음 집안 지도를 그리느라 얼마나 헤매는지. 멈췄다가 다시 시작 못 하고, 기껏 그린 지도는 리셋하고 또 헤매고. 베란다 창문 열려 있으면 꼭 거기로 가서 길 잃고 날 부른다.
눈 부릅뜨고 쳐다봐야 하는 애증의 로봇청소기 없으면 아쉬운 존재이긴 하다.
식기세척기 이모님이라고들 하잖아?
나도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서 100℃ 트루스팀 기능 있는 모델로 구매했다. 12인용 살까 하다가, 9인용으로 샀는데 그게 딱 맞았다.
근데 설거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손 설거지를 하게 된다. 음식 하면서 나오는 그릇이나 주걱 같은 건 그때그때 씻어버리고, 식사 후 나오는 설거지는 밥그릇 3개, 접시 몇 개, 수저들 뿐이다. 저녁을 먹고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다 밤늦게 하거나, 아예 아침에 하기도 한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샀는데... 왜 내가 계속 설거지를 하고 있지?
현실을 깨닫게 되면 그냥 그릇 몇 개 넣고 돌린다. 근데 물살이 생각보다 세다. 그릇에 금 가서 버린 것도 많다. 남편은 넣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귀찮단 말이다...
이제 오븐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우리 집 오븐은 동생이 이사 선물로 사준 거다. 내가 사달라고, 그것도 꼭 이 모델로 사달라고 해서 받은 선물. 빵도 굽고 쿠키도 만들고 요리도 할 생각에 들떴었다.
그런데 현실은...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가끔 통삼겹살구이 정도? 기능은 어마어마한데, 나는 아직 반도 못 써먹는 중이다. 그래도 “이제 겨우 1년 지났어.” 하며 위로 중이다.
언젠간 빵 만들어봐야지... 그런 생각만 하며 지낸다.
이 집에 오면서 나름대로 생활 방식이 생겼다. 혼자만의 시간도 좀 생기고, 여유 아닌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로봇청소기가 청소하고, 식기세척기가 설거지하고, 오븐에서 요리가 나오는 삶.
너무 멋진 것 같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로봇청소기를 돌리기 위해 식탁 의자를 전부 올리고, 커튼은 바닥에서 걷고, 카펫은 탈탈 털어 소파 위로 올리고, 1인용 소파, 흔들의자, 탁자까지 전부 밀어붙이고, 화장실 두 곳 문 닫고, 발 매트는 위로 올리고, 각 방바닥에 있는 물건들도 다 위로.
베란다 창문도 닫고, 청소기가 잘 다닐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한다.
거실은 손이 많이 가서 신경이 곤두선다. 거실 청소가 끝나면, 옮겼던 가구를 다시 정리한다. 그제야 로봇청소기 하지 못하는 베란다 청소를 한다.
식기세척기는 적은 양 설거지는 잘 못 돌린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게 된다.
오늘도 저녁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오븐은 전자레인지 기능으로 내 밥을 데웠다. 또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로 치킨너겟을 돌린다.
나는 김치찌개 끓이고, 달걀물 입힌 햄도 굽고, 오늘은 비가 와서 배추 전 부치고, 배추가 남아 겉절이도 했다.
기본 식사 준비만 한 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밥은 전자레인지로 1분이면 되는데 말이다.
소중한 이 집, 소중한 가전들, 그리고 소중한 우리 가족.
오늘도 나는 이 집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를 바라보고, 전자레인지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