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 가장 최근에 마음이 흔들린 순간은?

적적함을 남기고 돌아온 날

by 도도예

적적함을 남기고 돌아온 날

아빠 생신을 맞아 친정에 가려고 전화를 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오지 마라. 이번 주말에 바다에 가기로 했다."

그러더니 덧붙이는 말.

“아니면 너도 와라.”

바다는 둘째 이모가 계시는 곳이다. 엄마의 언니.

우리 외가식구들에게는 친정엄마처럼 늘 따뜻하게 대해주는 ‘바다 이모’. 아이가 어렸을 때는 여름이면 늘 이모네로 향했다.

우리 아이는 이모를 '바다 할머니'라고 부르며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모가 가게를 시작하면서 바빠졌고, 괜히 폐가 될까 싶어 발길을 끊었다.

아이도 자라고, 시간도 흘렀다. 이번엔 오랜만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동생에게 전화하니 밭일한다고 빨리 오라고 한다.

“알았어, 서둘러 갈게.”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멀고도 길다.

가까운 시내에서 케이크와 음료, 과자 등을 사 들고 도착하니 이미 집 앞마당은 한창 수확한 작물로 가득했다.

엄마, 아빠, 동생이 함께 마늘종을 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들. 어릴 적엔 참 많이 놀았는데 지금은 결혼식이나 돌잔치가 아니면 얼굴 볼 일도 없다.

그들의 나이도, 직업도, 연락처도 나는 모른다. 내가 무심했구나... 살짝 부끄러워진다.

하나둘 물어보고 나의 기억에 저장해 놓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로 향했다. 나는 갯벌에서 호미질하는 걸 좋아한다.

이번에도 꼭 하려고 했지만, 도착하니 벌써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딸과 함께 모래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처음으로 바다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았다. 꿈같은 장면이었다.

마음이 이상하게 먹먹했다.


사촌 동생들은 오후에 떠난다고 했고, 우리 가족을 일일이 다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부모님과 함께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우리도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사촌오빠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오늘 자고 가면 안 돼? 우르르 왔다가 다 가버리면 엄마가 좀 적적해하실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왜 미리 준비를 안 했을까. 괜히 불편하실까 봐, 번거로우실까 봐 ‘배려’라고 했던 건

사실 나의 편안함을 위한 계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모는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항상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는데... 그 마음을 아직도 다 헤아리지 못했다.

이모에게 오빠가 한 말을 전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이모. 준비가 안 돼서 오늘은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엔 꼭 다시 올게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모, 다음엔 꼭 자고 갈게요.

딸아이도 바다를 참 좋아하니까요.

그때 우리, 오래오래 함께 얘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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