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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영 Jan 05. 2020

우리 아빠는 청일점

치유의 글쓰기 1

이 노래가 시그널을 보낸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구비마다 한 많은 사연~~

우리 아빠 애창곡 배호의 <추풍령 >이다.

아빠는 얼큰하게 술 한잔 걸치고 대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

아빠가 술을 드시는 날은 긴장과 웃음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딸 셋에 아들 하나

4남매를 두신 아빠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표본이다.

평소에는 참 표현을 못하시는데 술은 아빠에게 있어 용기의  물약처럼 마시기만 하면 안고 뽀뽀를 하신다.

어릴 적 아빠가 안고 부비면 면도 후 자란 까슬한 수염이 피부에 쓸려서 아팠다. 어린 나는 싫지만 한편으론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 웃으며 도망을 친다. 그러면 아빠주머니 속에서  담뱃재와 뒤섞인 마른오징어와

땅콩을  한우 쿰 내어 놓으시며 어린 나에게 미끼를 던지신다.

"아빠한테 오너라~~"라고 하시면서....


내가 보낸 1980년대는 먹을 것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다.

밤이 긴 추운 겨울에 먹는 마른오징어와 땅콩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물론 지금 먹으라고 하면 쳐다도 안 볼 것 같지만 말이다.

그리고 먹다 남긴 안주를 남자가 주머니에 넣고 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커서 알게 되었다.

호주머니 속의 마른오징어와 땅콩은 아빠 자식사랑의 증표인 것이다.

배호  구글이미지 참고


타이머신을 타고 사춘기를 지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나는

아빠를 닮아서 인지 표현하는 것이 참 서툴렀다.


아빠의 꿈은 4남매 대학 졸업과 바로 딸들을 시집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곱게 키워 시집보내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하시고 눈을 감으셨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아빠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감히 짐작도 못하겠다.

나라면 멀리멀리 도망쳤을 것 같다.

술은 아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아빠가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주식투자로 엄청난 돈을 잃으셨다.

그러면서 아빠는 거의 매일 술과 함께 괴로움을 삭히셨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아이고.....

우리 딸들 시집 밑천이고,

미대 다니는 둘째 딸 유학 보낼 돈이고,  

막내아들 장가보낼 돈인데...

스트레스는 점점 더 아빠의 몸을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잠식시키고 있었다.

간암 말기 신한부 선고를 받으셨다.

내 나이 28살 때 일이다.


슬퍼만 하기엔 3개월이란 허락된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나는 아빠를 위해서 뭐든 해드리고 싶지만 무능력한 모습에 비참했다.

그래도 무엇이든 해야한다.

무엇을 좋아하셨지?

생각나는 것이 노래였다.

나는 당장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가요교실에 아빠와 함께 등록하였다.

가요교실은 99.999%가  중년 이상의 여성분들이 회원이시다.


접수하시는 분이 나를 쳐다보며 의아해하면서 물으셨다.

"아가씨 ~^^ 함께 등록하시는 분이 남자 이름인 것 같은데 혹시 엄마 라에?"

"아니요? 저희 아빤데요?"

"아~ 그래요?"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셨다.

" 아빠가 노래를 엄청 좋아하셔서 제가 함께 등록했어요."

나는 말기암 투병 중인 아빠의 고통을 노래로 치유해드리고 싶다고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개강 첫날

아빠 손을 꼭 잡고 함께 노래교실에 들어서니 강사님과 여성회원님들께서 뜨거운 환영을 해주셨다.

"아이구~우리 노래 교실에 청일점이 오셨네요."

"어서오이소~~ 잘 왔습니더" 초면에 아빠는 노래교실 스타가 되셨다.

음치 박치 몸치를 두루 겸비한 나는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아빠와 함께여서 행복했다.

지금도 그때 아빠의 웃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다.

집에서 카세트테이프 틀어가며 노래 연습을 하셨다.

수업시간 강사님이 앞으로 불러내시면  노래를 부르시고 흥이 나실 땐 학춤을 추시면서 즐거워하셨다.

아빠가 정말 흥이 나시면 학처럼 어깨를 들썩이면서 춤을 추시는데 학춤이라고 이름 붙여주셨다.

학춤 구글이미지 참고

한 마리 학이 자유롭게 날갯짓을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순간은  암도 쉬어가는지 고통도 잠시 잊어버렸다.

그러나 아빠의 병세가 깊어져서 가요교실은 더는 나갈 수 없었다.


'그리운 우리 아빠

철없는 둘째 딸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아빠가 그렇게도 궁금해한 미래의 사위가 옆에 있어요.

예쁜 손녀도 이제 9살이 되었어요.

보고 싶어요. 아빠...'

오늘 밤

울어서 권투선수처럼 눈이 퉁퉁 부었어요.

울보라고 놀리던 아빠가 생각나서 더 눈물이 나네요.

아빠 하늘나라에서 저 지켜보고 계시죠?

아빠랑 함께 불렀던 배호의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사랑해요. 아빠...


https://youtu.be/nY72QnEPf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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