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기적을 바라던 때가 있었다. 첫째 서원이의 아토피가 절정에 달할 때 온몸에 진물이 흐르고 자고 일어날 때마다 아기 담요가 피범벅이 되던 그때쯤. 나는 기적처럼 자는 잠에 이 아이와 함께 내 목숨을 거둬 가 주십사 기도했었다. 가려움에 고통스러웠던 서원이는 밤새 울며 몸을 뒤척였지만 잠시 젓을 물리고 동요를 불러주면 거짓말처럼 환하게 방긋 웃어주는 아기였다. 더 환하게 웃으면 건조하게 갈라진 피부 사이로 피가 스며 나오곤 했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부모의 죄책감은 이성을 빼앗아 갈 정도였다. 내가 서원이 대신 아파해 줄 수만 있다면, 내가 서원이의 가려움을 대신해 줄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토피는 원인도 모르고 해법도 없기 때문에 아토피이다. 양약으로 다스려지지 않는 아이의 고통을 덜고자 온갖 민간요법을 다 동원하며 돈과 시간을 전국에 뿌렸었다. 집에는 좋다는 한약재, 무슨 기름들, 온갖 로션과 크림, 정수기, 연수기 등 기기가 가득했다. 음식을 만들 여력이 없었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젖먹이 아기에게 그대로 전해져 혹시 해로울까 봐 함부로 사 먹을 수도 없었고 그저 식은밥에 물 말아 김치랑 먹으며 연명했었다.
몸은 하염없이 말라갔고, 3년간 통잠을 자지 못했지만 서원이가 겪고 있는 고통 앞에서 감히 힘들다는 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긴 병에 장사 없다고 가족들은 하나둘 지쳐갔었다. 잘 모르는 이웃이나 남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징그럽고 이상한 아기, 이상한 엄마. 나는 매일 피곤하다고 울상인 불쌍한 아내이자 며느리자 딸이자 언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서원이가 견디고 있는한은 나도 견뎌야 했다. 세상의 부정적 시선을 견뎌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엄마 저 아기는 왜 징그럽게 생겼어?"
"너도 엄마 말 안듣고 그러면 저렇게 병 걸리고 이상해 지는거야! 응?"
무지한 이들은 세치혀로 쉽게 칼을 휘두르곤 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27살 어린 새댁이의 가슴은 알지 못했다. 서원이와 나는 늘 생채기를 품고 살았다. 주변의 응원에 힘을 내는 것도 내 안에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힘내라, 파이팅, 잘 될 거야...' 이런 말은 진짜 고통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없는 파이팅을 대체 어디서 짜낸단말인가... 의사도 약속하지 못하는 아이의 건강을 어찌 감히 낙관한단 말인가...
당시의 나는 윗집 언니의 밥상 앞에서 위로받곤 했다. 언니는 그저 말없이 내게 밥상을 차려 주곤 했었다. 자기가 칭얼거리는 서원이 안고 있을 테니 어서 한술 뜨라며 내 앞에 숟가락을 내밀곤 했다. 찬이 없어 미안하다며 계란프라이를 꼭 두 개씩 구워주었다. 그 집에는 이미 세 아이들이 북적이는 대 가족에 외벌이라 형편이 넉넉지 않은 줄을 알던 나는 계란프라이 두 개가 얼마나 귀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밥상 덕분에 내 마음에 기근은 보릿고개를 견뎌내곤 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게 그런 이웃이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서원이의 아토피는 세돌 이후 차차 좋아졌고 지금은 건장한 대학생이 되었으니 나는 더 이상 아무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조금이나마 세상에 그 은혜를 값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살펴볼 뿐.
내일은 가정의 달을 기념해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함께하며 관계를 다독이는 그림책테라피 특강을 준비했다. 특수반 학생의 부모님이 혹시 자신도 지적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참여해도 괜찮겠냐며 굉장히 조심스레 문의하셨다. 목소리에는 이미 거절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당여히 함께 오셔도 된다고 시원하게 대답해 드렸다. 물론 진행 전반을 손봐야 하고 어쩌면 진행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윗집 언니의 밥상만 한 기적은 아니더라도 작은 햇살 정도 전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좀 더 바라자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작은 햇살 한 줌씩만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준다면... 세상에 기적이란 것은 흔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당신 주변에도 간절히 기적적인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따뜻한 가정의 달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