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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Aug 23. 2024

결국은 사랑

'태어난 아이 / 사노요코 / 거북이북스'

1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다.
                                                      ㅡ 유홍준교수


언제나 내 삶에 레이더는 '사랑'을 향해 있다. 소명을 따르는 것, 공감하고 공감받는 것, 이해하고 위로받는 것, 나를 알아차리고, 남을 제대로 아는 것, 그 무엇을 위한 어떤 삶도 결국엔 '사랑'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심리학서도, 오래된 철학서도 '사랑'을 언급하지 않고서 우리의 삶을 정의해 내는 책은 없다. 재미있는 건 공기처럼 물처럼 흔하게 떠다니는 그 흔한 '사랑'이 우리는 늘 어렵다는 점이다. 어렵기에 더 많이 떠올리고, 더 크게 욕망하고, 자주 언급한다.


사노요코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역시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엄마의 사랑을 욕망하며 태어남을 선택한다. 삶이란 피곤한 일인 줄 알면서도 아이는 어느 순간 태어남을 선택한다. 놀이터에서 만난 여자아이의 상처 난 엉덩이를 씻기고, 말려서 반창고를 딱 붙여주는 엄마의 눈길에는 사랑이 그득했다. 배고픔도, 따가운 고통도, 다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태어나지 않은 상태'의 아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단 하나는 사랑이었다. 강렬한 질투를 느낄 정도로 격렬히 원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사랑.


태어난 아이 / 사노요코 / 거북이북스/2016

다행히 태어나기로 결심한 아이에게는 반창고를 '딱' 하고 붙여줄 엄마가 있었다. 다만 바라보는 눈길에 여자아이의 엄마와 온도차이가 명확하다. 아이를 품에 안고는 있지만 아이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허공을 향한 엄마의 얼굴에는 그득한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배고픔도 느끼고, 모기에도 물리고, 커다란 반창고 자랑도 해 봤지만 잠자리에 들며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태어나는 건 피곤한 일이야."

 잘 생각해 보면 아이는 개에게 물리는 고통과 여자아이와 엄마를 보며 질투를 느끼는 사건이 있었기에 반창고를 붙여줄 누군가의 사랑도 갈망하게 되었다. 절망 옆에 희망이 있고, 슬픔 옆에 기쁨이 있고, 실패 옆에 성공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온도차이는 모든 사랑이 품고 있는 그늘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고난도 감사히 여겨라 따위의 위선을 늘어놓지 않았다. 되려 생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거친 펜선과 불안정한 색감으로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을 이어갈 용기를 내는 이유는 결국 사랑 때문 아니겠는가? 사랑이 충만해질 수만 있다면 배고픔도, 모기에 물리는 따가움도, 생의 어떤 억울함도 다 감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내가 용기 내어 거친 세상을 살아갈 이유. 깊어질수록 더 잘 공감하게 되는 '사랑'.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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