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이사를 준비하면서 새 가전을 둘러보았다. 온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구매의사를 외쳤던 물건이 있었다. 스팀, 발효, 찜, 오븐, 에어프라이 등 수많은 기능이 탑재된 데다 세련되기까지 한 광파오븐레인지. 70만 원이나 하는 광파오븐레인지는 일반 전자레인지 보다 비쌌지만 작은아들이 원하는 에어프라이 기능과 큰아들이 원하는 오븐기능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기꺼이 값을 치렀다. 하얀 몸체에 광이 나는 은색 테두리를 두른 그 녀석이 부엌에 들어오던 날 온 가족은 기뻤다. 늦은 저녁밥도 후딱 데우고, 맛있는 통닭도 굽고, 냉동감자도 바삭하게 튀기며 돈값하는 광파오븐레인지를 모두들 칭찬했다.
4년을 쓰는 동안 광파오븐레인지의 내부는 수많은 음식물들이 튀고 얼룩지며 흔적을 남겼다. 겉은 여전히 광이 났지만 속은 청소를 해도 처음 같지 않았다. 첫 해의 인기는 어느새 시들고, 찬밥을 데우는 정도의 기능을 주로 쓰다 보니 그냥 전자레인지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작동을 멈췄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뽐내는 이 녀석을 AS센터까지 들고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척 귀찮았다. 이틀을 뭉기적거리며 외면했지만 냉동실 찬밥을 데울 수 없다는 건 내게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이므로 결국 행동에 나섰다. 가족들이 힘을 모아 낑낑거리며 수레에 싣고, 차에 옮겨 실고, 조퇴를 내고, 힘겹게 AS센터로 가니 수리비가 12만 원이나 된다고 했다. 회로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12만 원이면 그냥 전자레인지를 한 대 살 수 있는 돈이다. 애먼 돈이 이렇게 눈감고 나가도 되는 것인가. 거대한 광파오븐레인지가 짐스러웠다.
하얀 몸체에 여전히 광이 나는 은색 테두리를 두른 그 녀석이 직원과 나 사이에서 오도카니 앉아 눈치를 본다. 7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서라도 녀석을 사고 싶어 했던 그날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굳이 미리 상상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쓰다 보면 낡고 고장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구매할 때 몰랐을 리 없다. AS센터 직원 뒤편의 전면거울에 슬쩍슬쩍 흰머리가 나기 시작한 내가 서 있다. 좀처럼 예전 같지 않은 체력에 편한 것만 찾으며 세월과의 타협을 일삼는 아줌마. 무릎 늘어진 바지아래 구멍이 날듯 말듯한 낡은 양말을 신은 엄지발가락이 슬리퍼 앞에 머리를 쑥 내밀고 있다. 그래도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며 꾸역꾸역 새벽운동을 하고, 작가라는 새 직업을 탐하며 밤잠을 설치는 애씀이 묻어있는 중년이 서 있다.
소유할 때의 기쁨 안에는 그것의 흥망성쇠가 선사할 시간이 다 들어있다. 물건도, 일도, 사람도, 모든 것들과의 인연이 다르지 않다. 시작은 언제나 예쁘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빛나지만 그 뒤에는 필히 낡고, 노쇠하고, 시들고, 처지고 꼬이는 시간이 따라온다. 내가 '가진다'는 것은 이후 따라오는 사건들도 내가 다 겪어내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한때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이 유행 한 이유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책임지거나 관리하고 싶지 않다면 가지지 말라는 새털 같은 유혹. 욕망덩어리인 나는 무소유도, 미니멀리즘도 다 실패했다. 그리고 광파오븐레인지도 12만 원 들여 수리했다. 다시 우리의 부엌으로 돌아온 녀석은 내 저녁밥을 따끈하게 데워주고 있다. 혹여 은색 테두리의 광이 사그라드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 물건을 가진 소유인으로서 누릴 것은 누리고, 감당할 것은 감당할 것이다. 소유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