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 동료는 누구일까?

ㅣ 우리의 도서관

by 느닷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전교생이 천명에 가까운 큰 규모의 학교이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근무 첫해의 나는 온종일 대출 반납과 서가 정리로 정신이 혼미했다. 쉬는시간 종이 칠 때마다 전속력으로 복도를 달려오는 아이들의 천둥같은 발소리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 와중에 연간독서교육 계획과 예산운영, 도서관 이벤트, 이용자 교육, 신간도서 구매 등 공격적으로 쏟아지는 업무는 모두 초면이었고 야근시간은 두통과 정비례하며 한없이 늘어났다.


“이 작가의 책과 비슷한 책 있을까요?”

‘글쎄요, 아직 장서 파악을 다 못해서요….’


“장서량은 얼마나 되죠?”

‘아… 그걸 어떻게 확인하는 건지 기억이 잘….’


“연휴라 반납 못한 건데 왜 연체되었나요?”

‘그러게요, 참 이상하네요….’


“정기간행물을 갱신해야 하는데 이번 주에 될까요?”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읽을 책이 없네요”

‘아… 책이 7천권이면 적지 않은데…’


“우리 학교는 규모가 커서 사서교사를 기대했는데 *전담사서라니 아쉽네요”

‘전공했고, 자격증 있고, 면접에 뽑혀서 합법적으로 출근했습니다만… 저도 참 아쉽네요…’

(* 전담사서는 임용시험 대신 면접으로 채용된 무기계약직이며, 수업권이 없는 공무직으로서 사서교사와 구분된다.)


2018년 첫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뱉은 말보다 삼킨 말이 더 많았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의 서툰 사서에게 누군가는 무례했고, 어떤 이는 외면했다.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대부분 한가한 방학에도 홀로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교사들과는 달리 임용을 치르지 않고 채용되었다는, 게다가 나이도 많다는 심리적 페널티에 짓눌려 처음부터 능숙하게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무능함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만큼 실수가 끊이지 않았다. 탈무드에서 인간이 절대 숨길 수없는 세 가지는 가난, 사랑, 재채기라 했던가. 여기에 풋내기를 추가해야 한다. 2018년 경남의 어느 구석 도서관에서 숨길 수 없는 풋내가 풀풀 풍겼다.


이곳은 ‘행복학교’라서 그런지 교육에 대해 남다른 열정이 가득한 교사들이 많은 젊은 학교이다. 학년끼리 회의하고 의기투합해서 의쌰의쌰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담임 선생님들을 보면 멋있고 빛이 났다. 학교도서관 사서는 이러한 교사들에게 수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어디에도 내가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았다.


공부에 지친 고3 시절. 어두운 밤 교문 앞에는 부모님들의 승용차가 하교하는 자녀들을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나는 그 눈부신 헤드라이트들을 등지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홀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막차를 기다리던 그 발걸음은 어느새 어수선한 학교도서관 구석을 향하고 있었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의 크키만큼 메워야 할 구멍이 컸다. 나의 도서관은 빈약하고 어설펐지만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하는지 조차 몰랐다. 의논할 사람이 필요했지만 모두 바빠 보였고, 아무도 도서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조언이 필요했지만 매일 눈치만 늘었다.


다른 이들과 활과 화살의 기쁨을 나누지 않는 궁사는 자신의 장점과 결점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시작하기 전에 동료를 찾아라. 동료는 네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다른 궁사를 찾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으라는 뜻이다. 열정을 품고 추구하는 길은 모두 궁도와 통하기 때문이다.
-The Archer(아처) / 파울로 코엘료 / 문학동네-



내가 꿈에 그리던 사서는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동료가 필요했다. 나와 함께 열정을 나눌 이는 누구일까? 고민이 마음속 바닥을 찍고 방향을 틀자 옹졸한 내면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낯가림 따위는 고이접어 학사운영 안내 책자를 읽을 때 책갈피로 썼다. 학교 구성원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일부러 짬을 내어 교무실을 들락거렸다. 커피를 마시고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그렇게 카페인에 중독되고 옆구리살이 두툼해지는 만큼 친분도 두터워졌다. 학생 도서부, 학부모 도서 도우미, 각반 담임 선생님들, 학년부장 선생님, 행정 실장님,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 인근 학교의 사서 선배님들 등등. 편견을 내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료로 삼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사서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나갔다. 선배라는 존재는 얼마나 든든한가! 처음 만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마음에 선배님들에게 마구 하소연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인근 초등학교 사서 H는 흔쾌히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견학 오라는 제안을 해 주었다. 경험 가득한 선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눈부셨다.


학부모 도서 도우미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도서관 이벤트를 함께 의논하고 설명했더니 메뚜기떼처럼 몰려드는 저학년들의 습격을 여유있게 받아내 주셨다. 서가를 이동할 때 기꺼이 수많은 책을 함께 옮겨 주셨다. 혹시 내가 병가로 자리를 비울때면 든든히 뒤를 커버해 주셨다. 학부모님들의 성실한 봉사는 소심한 눈치로 가득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대출 반납 바코드를 찍어보고 싶다는 학생, 책을 많이 읽는 학생 등 도서관을 애정하는 아이들에게 도서부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도서부들은 도서관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책 수레에 쌓인 책을 소독기에 넣고, 읽을 책이 없다며 방황하는 학생의 손에는 추천 도서를 쥐여 주었다. 도서관 행사 안내 포스터 제작과 이벤트 상품 선택은 도서부가 제일 즐겨하는 업무가 되었다. 도서부는 서서히 도서관의 주인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들에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독서를 하거나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사전 예약을 받는다고 홍보했더니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학급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신간이 들어올 때마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알렸더니 교과 과정과 연계한 도서관 활용 아이디어를 들고 오는 선생님이 생겨났다. 좋은 아이디어는 주로 잡담을 나누던 중에 탄생하곤 했다. 어느새 도서관 운영의 문제점에 대해 함께 의논할 수 있는 선생님까지 등장했다.


어느 순간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도서관이 교사와 학생들로 붐볐다. 이용자가 많아지니 많은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협소하고 불편한 도서관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고 학교 예산이 자연스럽게 추가 편성되었다. 관리자들은 도서관에 들어가는 예산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는 아니다. 마음을 열고 5년 동안 천천히 열정을 품은 동료를 찾았고, 그들과 협력하니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었다. 어느덧 풋내나던 어수선한 도서관은 사라지고 학교 공동체가 모두 함께 누리는 우리의 도서관이 만들어졌다. 이용자들이 도서관 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니 학교 도서관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주인인 공간이 되었다. 풋내 풍기던 도서관이 이용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 움직였다. 일 폭탄과 다크서클이라는 부산물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지만 도서관이 살아나는 만큼 나도 조금씩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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