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내 이름은 엄마다.

ㅣ 사춘기. 이 또한 지나가리니.

by 느닷

흩날리는 벚꽃잎이 무색하도록 차가운 월요일 새벽. 모래더미를 쌓아놓은 듯 퉁퉁부은 눈꺼풀이 위아래로 붙어버려서 잘 떠지지 않는다. 지난밤 얼마나 긴 시간을 울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딱 그만큼 눈두덩이가 부어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제 가슴 깊이 날아든 말은 까끌한 혓바닥만큼 선명히 떠오른다.


"아 밥 안 먹는다고! 게임하고 있잖아~ 무슨 소리야? 엄마가 지금 내 일상을 침해하고 있는 거야!!"


사춘기이니까... 부쩍 말을 던지듯 휙휙 하는 녀석인 줄 잘 알고 있지만 어제저녁 큰아들이 던진 말들은 유난히 더 아팠다. 평소에는 잘 발라내던 생선 가시 같은 말들이 어제 따라 내 지친 마음 어딘가를 헤짚어버렸다. 험악한 분위기에 샌드위치마냥 끼여있던 둘째가 어느새 나와 같이 운다. 서둘러 집밖으로 도망쳐 보지만 이미 '설움버튼'은 눌러졌다.


무작정 차를 몰고 나섰다. 바닥을 기며 울음으로 이혼의 고통을 긁어내던 아픈 계절의 퀴퀴한 냄새까지 소환되기 전에 울음을 멈춰야 한다. 내일이 출근인 줄 알지만 한번 터져 나온 울음은 내 의지로 쉽게 멈출 수 없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좁은 차 안에서 홀로 끝없이 우는 신파라니.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밤이다.


그럼 이 험상굳은 얼굴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하나... 두통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던 친구 B를 다짜고짜 깨웠다. 약기운에 몽롱한 B는 경황없이 불려 나와서도 용케 나를 위로할만한 도구로 쵸코아이스크림을 생각해 냈다. 쵸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려 손을 더럽히기 전에 차가운 달콤함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데 말이다... 긴 한숨과 함께 피식 웃음을 찾아냈다.

"엄마 미안해요..." 늦은 밤. 제풀에 지친 큰아들의 울먹이는 전화에 나는 꺼이꺼이... 한 번 더 눈물바다를 건넌다.




점점 말수가 줄고, 도통 웃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큰아들은 최근 몇 년간 내게 아픈 손가락이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새 만 18세. 다그치거나 얼르기엔 성인 못지않은 녀석의 어깨가 너무 커버렸다. 정작 본인이 제일 외롭고 힘들 테지만 지켜보는 엄마도 함께 견뎌내야 하는 안개 같은 시간들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예민한 나이에 가정불화가 잦았다. 아이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혼가정에서 성장했다. 미안한 마음의 크기만큼 더 많은 사랑을 주려고 애썼지만 내 애정은 아무래도 반쪽밖에 안 되었던 모양이다. 보드랍고 순하던 큰아들은 때늦은 사춘기의 터널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수다스럽고 다정하던 녀석의 입이 돌부처처럼 굳게 닫혀버렸다. 뭐가 그리 힘들고 부당한지, 화가 나는 건지, 말하지 않고 답하지 않으니 속을 알 길이 없다. 크느라 힘들구나... 그 속에 말 못 할 상처가 한둘이겠나...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음이 짚는 대로 지레 짐작하며 터널 끝을 서성일뿐.


기약 없이 홀로 서성이는 사춘기 터널은 내게 음소거된 정지화면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안 된다. 모르는 것 투성이의 어설픈 엄마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소통을 포기한 큰아들. 녀석에게 매일 밤. 매일 새벽.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는 내게 제일로 소중한 사랑이라 말해 준다. 큰아들이 혹시 잠결에 들었을지도 모를 나의 주문 같은 사랑이 언젠가 녀석의 가슴에 가 닫을 때까지, 내 불안이 잠들 때까지 나는 이 되뇜을 계속할 밖에 다른 수를 모르겠다.




아... 현실은 월요일.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다. 에잇! 뒤늦게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눈두덩이에 아이스 팩을 얹고, 짙은색 아이섀도를 듬뿍 발라가며 정신을 차려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누가 봐도 엄청나게 울다 나온 사람의 눈을 하고 출근을 했다. 부어서 저릿저릿한 눈꺼풀을 치켜뜨고 수업도 하고, 점심도 먹었다. 다들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고 내 눈치만 본다. 나는 온종일 뭔가 사연 있는 여자가 되어 돌아다녔다.


결국 교무실에서 일등으로 다정한 J가 조심스레 내 눈의 안부를 묻는다. 참... 어디부터 얼만큼 말해야 이 눈을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보시다시피 어제 좀 많이 많이 울었어요. 아니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속상한 일이 좀 있었어요. 네... 이제 다 괜찮아졌어요. 내일이면 가라앉을 테니 그냥 못 본 체 해주세요." 마무리로 입꼬리를 힘껏 끌어올려 하하하...


싱글맘은 꾿꾿해야 한다. 살아내야 하는 일상 어디에도 힘들다고 징징거려도 될만한 구석은 없다. 그따위 감정은 고이 접어 스스로도 모를 만큼 깊숙이 치워둬야 멀쩡히 직장생활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다. 다만 불시에 '설움버튼'이 강제 작동될 수 있으니 늘 평정심을 잘 유지해야 한다. 어제는 근래 들어 드물게 그것을 실패한 날이었다. J는 가만히 내 손을 잡아준다. 불쌍도, 안쓰럼도 받고 싶지 않은 내 손에 딱 위로만 담아 꼬옥 쥐여주는 J.


오후에 화장실에 들러 사연 있는 여자의 눈 상태를 살펴본다. 하... 그대로다. 일 년에 두어 번 할까 말까 한 전체회식이 하필이면 오늘이다. 이 눈으로 전 교직원을 마주할 용기는 없기에 패스. 마침 지나가던 S가 가만히 내 오른팔을 끌어당겨 그러안고 미소를 건넨다.

"일 때문이면 내가 범인을 잡아와서 퐉! 혼내줄라 했는데 말이야~ 어쨌든 괜찮아졌다니 넘어가준다잉~"

오른팔에 남은 S의 핸드크림 향기에 축 늘어져 있던 기분이 살포시 일어난다.


회식에 왜 안 오냐고 기다리고 있다며 Y에게 전화가 온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회식에 빠지는 것이냐며 K가 수화기 너머로 나를 살핀다. 아, 못 본 체 하면 된다 했구만은 이 사람들이... 자꾸만 내 말을 무시하고 내게 사랑과 관심을 건넨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관심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데 따스하다. B, J, S, Y, K... 구구절절 내 속내도 모르면서 무시로 침범해오는 다정함이 결국 나를 다시 웃게 한다.


감정은 통장 속 저금같다. 평소 그들에게 쌓아두었던 긍정을 오늘 한움쿰씩 빼썼다. 그러고도 잔고가 넉넉한 통장을 보니 든든하다. 마음이 진짜로 괜찮아 진다. 어쩌면 사춘기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를 큰아들의 침묵. 녀석에게 나도 무시로 씩씩한 다정함을 저금해 본다. 언젠가 내 사랑을 인출해 갈 녀석과 함께 웃고 싶은. 내 이름은 엄마다.


나의 아기 오리에게 / 코비 야마다 / 상상의힘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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