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이 던진 질문이다.
매일 밖으로만 도는 중2 딸, 그날은 늦은 밤 대로변 추격전 끝에 겨우 붙잡아 데리고 오는 길이었다. 가기 싫은 발걸음을 마지못해 미적대며 옮기 던 딸이 "엄마, 할 말이 있어요."라고 한다. 순간 마음이 덤벙거린다.
"그래 좋아. 하고 싶은 말 어디 맘껏 해봐.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게 하며, 학교 면담실을 내 집 드나들듯 하게 만드는지 할 말 있으면 어디 해봐"라고 마음속에서 메아리쳤다.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용기는 없었다. 딸이 무슨 말을 꺼낼지 두렵고 덤벙거린 마음을 숨기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분함을 최대한 흉내 내며 답했다. "그래 말해봐. 괜찮으니 하고 싶은 말 다 해봐"
“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잘했다고 칭찬해주거나 얼마나 힘드니?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 갑자기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딸의 말에 뭐라고 답을 할 수 없었다. 평소 딸의 존댓말은 주위 사람들에 부러움을 샀지만. 이런 말을 존댓말로 들으니 요즘 애들말로 개 무서웠다. 이렇게 사춘기는 아무런 예고 없이 시작됐다.
머릿속이 아득해지고 딸을 키웠던 15년이라는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저 깊은 해마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현관문이 세차게 열리고(초등 어느 때)
"엄마, 엄마, 엄마~~ 나 상 받았어"
"무슨 상?"
"우리말에 대한 글을 쓰고 관련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내는 그런 대회가 있었거든"
"아, 그런 것도 있었어?"
"어, 그런데 나 상 받을 줄 알았어"
"어떻게?"
"국어 선생님께서 지나가다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시더니, 표정이 확 밝아지시던데요?"
"아, 그랬구나~ 알았다."
얼어 죽을 그놈의 라따 라따 "알았다."
모든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방학이 되면 워킹맘인 엄마를 대신해 5살 어린 동생을 돌보며 부실한 점심으로 팍팍한 방학을 보내야만 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둘째가 벽에 붙어 꼼짝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둘째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누나가 테이프로 나를 벽에 붙였어"
"뭐라고? 누나가 돼서 동생에게 왜 그런 거야?" 급한 말만 쏘아대며 얼른 동생을 떼어주라고 했다.
슬프고 억울한 딸의 눈동자가 마음에 박혔다. 너도 오죽하면.
중학생이 되고 각종 수행평가와 교내 대회에서 영어 에세이 쓰기, 독서포트폴리오, 우리말 사랑대회, 과학발명대회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상을 받아왔다. 그런데 "잘했다. 네가 최고야. 힘들었지?"라고 말한 기억은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순간 이토록 서럽게 울고 있는 딸의 아픔이 온전히 느껴진다. 그동안 엄마로서 어떻게 살아온 거야. 마음이 쓰리고 아린 날이었다.
“미안하다. 분명 우리 딸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지 표현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아이에게 한 참을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마음속 물음표는 점점 커져갔다. 도대체 왜 잘했다. 대견하다. 가 아니라 알았다. 고만했을까.
어느 날 유튜브에서 저명한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늘 잘하는 아이는 잘해도 부모로부터 칭찬을 못 받아요.
부모가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그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랬구나. 애쓴 너에게 감사함이 없었구나. 어제도 오늘도 무탈하고 성가시게 하지 않는 넌,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지내왔던 것이다. 마음이 지하 10층으로 내려앉았다.
딸에게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모범생이었던 딸은 점점 문제아가 되어갔고, 그렇게 마음속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