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많은 생각 끝에 택한 방법이었다.
[네이버 국어사전]
회초리 _ 때릴 때에 쓰는 가는 나뭇가지. 어린아이를 벌줄 때나 마소를 부릴 때 쓴다.
매 _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는 막대기, 몽둥이, 회초리, 곤장, 방망이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또는 그것으로 때리는 일.
딸을 키우면서 이런 일은 생각지 못했다. 상대 부모는 합의가 없다고 했다. 죄송하다 거듭 사과드리고 합의를 바라고 연락드린 건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다. 딸과 함께 만나 뵙고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만남은 거절되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 같으면 합의해줄까?" 생각을 거듭해도 결론은 같았다. 합의는 없다.
나도 힘든 걸 상대에게 말할 순 없다. 또한 잘못을 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맞고 그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정리가 된 다음 남편에게 말했고 남편도 내 생각에 동의한다고 했다.
경찰서에서 꼬박 4시간을 진술했다. TV에서 많이 봤던 장면 속에 딸과 나란히 삐걱거리는 철재의자에 앉아 있었다. '도둑의 때는 벗어도 자식의 때는 못 벗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내 자식 허물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응석으로 키운 자식이 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도 애쓰고 키운 기억밖에 없는데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도 아닌데 뭐가 잘못됐을까? 뭘 잘못했을까?를 그사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 나와 마주한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딸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간절한 마음 끝에 말로만 타이르는 것은 답이 아니다. 는 결론에 도달했다. 요즘 많은 육아서, 육아 전문가, 교육전문가, 청소년 정신건강 전문의 들은 말한다. 체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지금은 훈계 몇 마디의 고상한 방법으로는 어떤 깨달음도 주기 어렵다는 걸 직감했고 체벌이 반드시 필요하겠다. 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도 회초리가 아닌 매가 필요하다는 생각. 사안이 그랬다.
생각은 중학교 3학년 나의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간다. 아빠에게 제대로 혼난 적이 있었다. 그때 분명 자식을 가르쳐야겠다. 는 아빠의 마음을 또렷이 느꼈고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잘못했기에 억울함도 없었다. 분노하는 마음을 실어 체벌하지 않는다면 진심은 분명 전해질 거라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자기를 만 프로 닮은 딸에게 눈이 먼 딸바보 남편은 마음이 여리여리 하여 체벌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남편에게 난 기댈 게 없었다.(이럴 때 아빠가 쫌! 애를 휘어잡든 두들겨 패든 뭐라도 했으면)
딸은 엄마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걸 직감했는지 볼일도 없는 화장실에서 30분째 나오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딸을 데리고 아니 끌고 가 맞겠다.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면서 매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빠르게 스캔했다. 그때 거실 벽에 걸려있던 딸의 대형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곰돌이를 안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유행했던 성장앨범. 세상의 상술에. 첫아이라는 미숙함에. 그 당시 200만 원이란 거금을 눈퉁이 맞고 초보 엄마. 아빠로서 만족하며 만든 성장앨범 중 가장 큰 액자였다. 이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호기 롭게 그 액자를 들고 안방 문을 잠그고 들어섰는데 이걸로 어찌해야 할지 그 짧은 시간 막막했다. 막상 들어보니 굉장히 가벼웠고 만져보니 아주 얇은 합판으로 되어 있었다. 이걸로 때린다 해도 다치거나 죽진 않겠다. 는 확신이 생겼다. 액자를 벽에 내리쳤더니 매로 쓰기 딱 좋게 앨범 테두리가 떨어져 나왔다.
딸이지만 힘으로 밀린 지 꾀 되었고. 내 손을 잡는다면 난 그저 힘없이 받아 들여야 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뭔지 딸은 묵묵히 맞고 있었고.
"죄송해요.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라고 울먹였다. 체벌은 엄마도 아이도 낯설었다.
남편은 결국 잠근 문을 열고 들어 와 나를 말렸다. 눈은 이미 발개져있었다.
모르겠다. 아이에게 진심을 전할 방법을.
그렇게 우리는 판사 앞에 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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