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난 절대 울지 않기로 했다.
청소년법원, 그래 청소년 법원이라는 곳도 있구나. 평생 모르고 살면 좋을 곳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다. 싱그러우면서도 쌀쌀한 어느 봄날 오전 10시. 재판이 있는 날이었다.
아직 겨울이 채가시지 않은 초봄이라 재판장 앞 복도의 바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듯 쌀쌀하기 그지없다.
법원서류를 받아 들었을 때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 장소에 와있는 지금 절절히 실감하고 있었다. 절대 울지 않아야지. 선처를 바란다고 읍소하지 말아야지.라고 수만 번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쏟아지는 눈물과 콧물은 마스크로 가리기 어려워 여러 차례 밖을 오가면서 훔쳐 낸다.
9시에 도착해서 1시간을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 차가운 복도에서 많은 삶을 보았다.
많아야 초등 3-4학년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부모님 & 변호사와 함께 있었고, 그 아이 엄마는 아들의 손을 연신 비벼 잡고 간신히 눈물을 누르고 있다. 그 애처로운 표정. 나도 저런 모습이겠지. 담당 변호사는 최소처벌과 최대처벌의 경우 어떻게 되는지, 판사 앞에서는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주의사항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차분 차분히 설명하고 있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떤 남학생은 오토바이를 훔쳤는지 다시는 훔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며 엄마, 아빠로부터 신신당부를 받고 있었다. 그 학생은 부모님이 뭐라고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고 애달픈 부모님만 마음이 바빠 보인다.
엄마와 함께 온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은 마냥 고개를 떨구고 바닥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 속에 내 모습, 내 아이 모습이 있었다.
재판이 있기 한 달 전 법원에서 사전조사를 했다.
조사관은 엄마, 아빠, 아이를 각자 따로 면담을 했고 서로 이야기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날카롭게 살폈다.
(거짓말을 한다거나 서로 입을 맞추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바로 들통날 분위기였다. 그럴 마음도 아니었지만.)
마지막 면담자는 엄마인 바로 나였다.
조사관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가 이토록 방황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다.
" 보통 재판이 열리기 전에 이렇게 사전조사를 하시나요?"
" 아닙니다. 판사님이 사건 경위를 보시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판단될 경우만 사전조사를 명합니다."
그랬다. 판사가 보기에도 의아했던 것 같다. 조사관의 말은 이어졌다.
" 부모님께서 서로 큰 갈등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 않으며 지극히 평범한 가정으로 보이는데 아이가 이렇게 엇나갈 때 다른 원인이 뭐가 있는지. 앞으로 갱생의 여지는 어느 정도인지. 가정에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사전에 조사하여 판결에 참고하고자 합니다."
"아이와 면담을 해본 결과 반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부모님 모두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있고 가정에서 케어가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판결은 판사님이 하시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판사님께 할 말 있으십니까?"
마음속은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고 싶어 요동친다.
"아이가 원래 너무 착해요. 철이 없고 뭘 몰라서 그래요. 저희가 책임지고 아이를 잘 케어할 테니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아이가 잘못을 했고, 잘못한 데로 처벌받기를 바랍니다."
"정말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십니까?"
"네"라고 답하는 순간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어느덧 10시가 되었고, 아이 이름이 호명되었다.
문이 열리고 인자한 표정의 여자판사님이 중심에 있었다. 법복을 보는 순간 마음은 다시 회오리 친다. 아빠, 아이, 엄마 셋이 판사님을 마주 보며 서게 되었다.
아이가 잘 못한 부분이 열거되고 판결의 종류와 내용이 나열되었다.
아이에게 마지막 할 말이 없는지 물었고, 그다음 부모에게 물었다.
절대 울지 않기로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눈물이 먼저 마중 나온다.
"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한 부모로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키우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그리고 판결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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