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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May 22. 2024

친구전화, 반갑지만은 않네요

모난 성질 머리를 장착하고 미안해도 미안하다 고마워도 고맙다는 말조차 잘 못했던 숙맥 같은 20대의 나를 받아주었던 캠퍼스에서 만난 어여쁘고 고마운 친구들은 어느새 애둘, 셋의 아줌마가 되어 직장인으로 또는 전업주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공기처럼 붙어 다니던 20대 청춘 그 시절. 서로의 연애사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지내던 그때가 참 예쁘고 좋았다. 풋풋했던 남자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해 주었던 그녀. 그때는 얼마나 고마운 친구들인지 미처 몰랐다.


시간이 흘러  들고 언젠가는 그때 그 시절 고마웠다고 말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아직도 못 하고 있다. 다들 무늬만 여자인 무덤덤 그 자체라 이게 뭐라고 참 어렵다.




졸업하고 각자 삶을 살다 보니 서로의 소소한 일상은 잘 모른 체 시간이 흘렀다. 그저 1년에 몇 번 안부를 묻고 전국에 흩어져 사는 덕분에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겨우 보고 산다. 그러다 보니 친구에게 전화가 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오랜만에 전화가 울린다. 반가움과 걱정이 교차하는 순간 버튼을 눌렀고 돌고래 소리 내며 반가운 척이라도 해야 하는 친구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무슨 일 있어?"

"있잖아 J의 언니가 자살을 했데"

놀라고 슬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아무 말도 못 했다.

"J에게 연락받은 건 아니고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됐는데 하필 외국에서 바이어가 와서 나도 이제야 통화를 했어" 사는 거 바빠 연락마저 바로 못 한 것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이 가라앉은 목소리에 한껏 묻어나있다.


뭐 하고 사느라 이런 일을 겪고도 전화 한 통 편히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을까. 한없이 미안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말 안 했어" 울지 않았어야 했는데 참고 눌러도 주책없이 흔들렸다.


무던하고 무뚝뚝한 아들 같은 딸 J는 "그냥 사는 거지 뭐, 애들도 내 눈치를 보고 상처받은 부모님도 돌봐야 하니 힘들어 할 수가 없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덤덤히 말했지만 흐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울고불고했으면 덜 아팠을 것 같다. 힘들고 힘들어도 지랄발광이 안 되는 친구다. 나처럼.


"아프면 아프다고 말 못 하는 너랑 나 같은 사람은 곧 다가올 갱년기가 되면 핵폭탄보다 더 무서워질지 몰라. 슬픈 만큼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 하고 해야 해. 꼭 그래야 해" 친구가 걱정돼 위로보다 당부를 해버렸다.




맑고 큰 눈망울에 고운 심성을 갖고 있던 천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했던 언니였다. 친구집에서 살다시피 한 대학생활동안 거의 매일 마주했다. 꽤나 귀찮았을 텐데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내주곤 했었다.


몇 년 전 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그래도 잘 극복하고 살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이 바람과 공기 그리고 저 하늘을 이제 언니는 못 보는구나. 그날밤 너무 슬퍼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날 며칠 밝게 웃는 언니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얼마 전 자기 인생에 남은 게 없는 것 같다고 했었는데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하잖아.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인지 알았어. 좀 더 들어줄걸. 그때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라며 J는 스스로를 한없이 자책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을. 곁에 있으면 밥이라도 챙겨줄 텐데 힘이 되어주지 못해 아픈 마음을 대신해 돈이 란 걸 보냈다.


"나 잘 받을게"라는 친구의 말이 귓전에 울리고 또 울린다. 쓰리고 아픈 말이다.




사진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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