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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Dec 04. 2019

나는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feat. 두 명의 한국인 오너에 대한 기억

모처럼 가족끼리 단란하게 보내고자 모진 눈발을 뚫고 집 밖으로 나왔는데 회사로부터 일을 하러 오라는 콜을 받았다. (악천후에는 많은 직원들이 휴가를 쓰기 때문에 오히려 불려 나갈 일이 많다.) 24시간 가동되는 회사이다 보니 주야 없이 돌아간다지만 여태껏 한 번도 일요일에는 콜을 받아본 적이 없어 회사가 주말에도 오픈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물론 회사의 부름에 '거절'을 누를 수도 있지만 말단 중에 말단인 내가 일을 거절한 기록이 남는다면 전화가 돌아올 순번이 뒤로 밀려나기에 눈물을 머금고 부랴부랴 회사로 향했다. 


앞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내리는 눈 때문에 도로 위에는 휴일임에도 차가 몇 대 없다. 윈터 타이어를 아직 교체하지 못해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회사로 향했다. 도착한 회사 주차장에는 평소와는 달리 한산하다.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는 직원들을 보아하니 대부분 나와 같은, 회사에서 불러야 일을 할 수 있는 온콜 포지션 신세들임에 틀림없다. 눈이 펑펑 내리는 휴일, 남들은 외출을 꺼려하는 날씨에 회사의 부름에 억지로 나온 듯 한 발걸음은 그들이나 나나 여지없이 똑같은 모습이다. 출근 카드를 찍고 슈퍼바이저가 할당해 준 포지션으로 가보니 전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새내기들이다. 황금 같은 주말에 불렀다는 원망 어린 눈 빛이 하나같이 똑같다. 어김없이 기계는 돌아갔고 우리는 말없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일을 하다 보면 짬짬이 옆 직원들이 말을 걸어온다.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대부분 캐나다로 이민을 온 이민자들이다. 그들의 자국 이력들을 들어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4년제 대학 이상을 나온 고학력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재에도 사이드 잡을 병행 하며(나와 같이)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 사이드 잡들도 들어보면 굉장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부터 자동차 매캐닉 기술자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들도 반대로 나에게 이력을 물어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서로가 이해되지 않은 화려한 스펙들과는 별개인 일을 하고 있기 때문. 


"너는 하던 일 계속하고 살아도 되는데 왜 여기에 입사했니?" 


라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예외 없는 이민자라는 신분, 우리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일 다운 일을 찾아온 것임을. 그들도 나처럼 불편한 안전화에 어색한 장갑을 끼어야 하는 일을 하고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을 어느 정도 하고 오지 않았을까. 회사 생활이라곤 오피스룩에 구두를 신고 일했던 것이 전부라 판이하게 다른 지금의 모습이 아직도 어색하지만 곧 적응이 될 일이다. 



한국인 직원을 대하는 한국인 오너의 자세



캐나다에서 나는 두 명의 한국인 오너와 한 명의 중국인 오너 아래에서 일을 했고 지금의 회사(규모가 커서 사장님이 누군지 모른다)로 이직했다. 보통 한국에서 지켜보는 외국 생활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인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라는 말은 두 명의 한국인 오너 중 한 사람에게는 적용시킬만했다.


(두 오너를 A와 B로 칭하기로 하고) A와 B 둘 다 캐나다에 산지는 25년 이상이 된다. A는 이민 1세대이고, B는 1.5세대이다. 두 사람의 살아온 히스토리는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둘은 현재 오너, 보스라는 호칭으로 나름 성공가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A와 B의 학력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1.5세대인 B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고학력자로 전문가라는 타이틀로 가지고 있고, 1세대인 A는 그 시대에서 가장 어렵지 않게 이민할 수 있었던 요리사라는 타이틀로 살아간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사' 자로 끝나는 호칭은 같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기준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3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산 고지식한 나부터도 기대하는 시선의 기준이 처음부터 달랐으니까. 


하지만 많이 배운 이와 (형편상) 많이 배우지 못한 두 사람의 행동 이력을 살펴보면 극도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단 직원 고용 시 신분에 약점이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비자 혹은 영주권 때문에 회사의 스폰이 필요하거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은 급여를 조금 덜 받더라도 일을 빡빡하게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에게 일종의 무기와 같은 영주권이 오너의 다양한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스펙과 높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되려 피하려 한다. 이유는 당연히 경력에 맞는 높은 급여를 요구하기 때문이고, 오너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따라주지 않는 경향들도 없지 않다. 경력이 많다는 의미는 이민생활이 오래되고 신분이 안정된 경우가 많다. 그들은 한국식과 캐나다식 마인드가 반반씩 섞여,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하는 것에 오너들의 미간은 일그러지게 만들기에 오너가 굳이 고용하는 케이스가 흔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A와 B에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한국 경력을 살려 롱런할 수 있었던 B의 회사에서보다 A 아래에서 더 오래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그에겐 인간적인 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B의 회사를 노티스 없이 그 날로 때려치우고 나온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A는 나에게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은 없다. 적어도 직원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물론이거니와 도움이 필요할 시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A 주위에는 몇 년 이상 일한 직원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B는 단 1센트도 손해보고 싶어 하지 않는 치졸함을 직원들 앞에서 여김 없이 발휘했다. '내가 돈 주잖아. 닥치고 시키는 데로 하라고!'라는 무언의 압박을 주던 그의 행동은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짧게는 2주, 길게는 3개월에 한 번씩 새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그곳에 잔류하지 않고 나온 것은 인생에서 잘한 일로 꼽을 것이다. 


퇴근길 회사 주차장


한국인 오너라고 모두 같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겪은 한국인 오너는 겨우 둘 뿐이라 온전히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극명하게 갈리던 두 오너 아래에서의 시간들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타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소중한 히스토리로 남아있다. 그들은 나라는 인력이 필요로 하고 나는 그들이 제공하는 돈이 필요했다. 정답 없는 이민생활에서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로 당장 모국어를 쓰며 일을 할 수 있는 옵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5년 만에 제대로 된 비한인 회사에서 일을 한다. 덜컥 짐 몇 개 싸들고 타국에 발을 디딘 후 전전했던, 한국사람만을 고집하던 일자리로부터 해방이라고 볼 수 있다. 오너가 한인이건 캐네디언이건 나는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임은 같은데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있다. 일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캐나다식 조직체제와 환경을 몸소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캐나다 속 좁은 한인사회를 벗어나 이제야 진짜 캐나다에 입성한 기분이다. 갈 길은 아주 많이 남았지만 캐나다 한 귀퉁이쯤에는 귀속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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