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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Dec 20. 2019

영어 핸디캡

캐나다 살아도 영어 못할 수 있지?!

"와 이제 영어 정말 잘하겠네?"

"뭐... 그냥 그럭저럭 사는데 문제없을 만큼만 해..."


이민생활이 6년이 되다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할 일이 생기면 마치 관례처럼 영어실력 향상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는 한다. 친구들이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캐나다 이민생활은 티브이 무슨무슨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영어를 유창하게 쓰면서 원어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장면일 테지만 정작 우리의 실제 일상들은 한국에서의 삶을 통째 옮겨온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온종일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한인마트, 한인식당, 한인 미용실이 지천에 있어 마치 서울특별시 캐나다 구 토론토 동에 사는 것과 다름없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외국생활에서 기초 중에 기초인 언어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민자들이 뛰어넘고 싶은 높은 벽 중에 하나일 텐데, 와서 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늘거라 생각했던 생각이 얼마나 대단한 자만이었는지 처절하게 몸소 느끼고 있다.



엄마! 그 발음이 너무 웃겨!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한 아이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혀가 단단하지 않을 때 영어를 시작한 아이의 언어 흡수력은 스펀지 같다는 어린 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온몸으로 영어를 받아들이는 아이의 영어 실력 향상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 속도와 자연스러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괜히 영어는 어릴 때 시작해야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티브이, 책, 주변 친구들과 접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듯 가속을 붙여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민을 와서 수없이 걱정했던, 말을 못 해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한 고민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었다.


한 번씩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수록 우리의 영어 실력 격차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점점 깊은 대화가 힘들어져 아이와 정서적으로 나눌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에 맞는 설명과 아이에게 설득이 될 만한 조언들을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기에는 아직까지 힘들기 때문이다.


종종 오래된 이민 선배들로부터 듣는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멀어졌다는 1세대와 1.5세대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단 이 곳에서는 흔한 일이다. 언어에 문제가 없어도 성장과정에서 얼마든지 틀어질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기초적인 대화에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린다면 그 후의 일들은 지켜볼 필요도 없는 문제이다. 서른을 훌쩍 넘겨 시작한 새로운 언어로 아이와 깊은 유대관계를 지키기 힘들다는 결론 하에, 아이가 달가워하지 않는 한글 공부를 뒤늦게 시킨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럼 도대체 얼마큼 해야 영어를 잘하는 것일까.




그나마 나는 행운인 것이 캐나다에 입성하여 랭귀지 스쿨을 몇 개월 다녔고 대학도 힘들게 졸업을 했다. 물론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굉장히 대단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같은 많은 이민자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가족의 비자와 영주권 문제 해결방안 중 가장 (비싸고)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등록금(1년에 평균 천오백만 원 정도)을 납부해가며 대학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 제2의 커리어, 제2의 삶을 위한 도약으로 힘든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합법적 거주 방안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실력(아이엘츠 6.5 정도)을 갖추어야 하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졸업에 필요한 영어 레벨 패스가 필수이기 때문에 졸업 후에는 꽤 향상된 영어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2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어로 된 수업과 과제, 프레젠테이션까지 빡빡한 일정으로 소화해내어야 하기 때문에 어쨌든 기초실력은 어느 정도 향상이 된다.


그렇다고 졸업 후에 스피킹 실력까지 무한정 향상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절대 No라고 할 것이다. 영어 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이 스피킹이고, 꼭 영어를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영역에서 가장 먼저 꼽히는 것 역시 말하기(스피킹) 실력이기 때문이다. 비싼 돈 들여 학교도 졸업하고 고급진 영어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아주 큰 불편함을 느낄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해서 나의 영어실력이 이제는 출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내가 썼던 영어를 생각하면 용기가 가상하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유명하다는 캐나다 팀호튼 커피를 주문했을 때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세트로 주문하며 버벅거렸던 장면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억울한 상황일 때 제대로 따지지 못해 손해를 입었던 경험이나 특히 취업 준비 중 수 없이 까였던 면접 과정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수 일을 열심히 준비해 갔건만 기습 질문에서 와르르 무너졌던 나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고 처음엔 귀 기울여 듣던 면접관의 관심이 바닥까지 떨어져 가는 표정을 지켜보는 것은 일생에 손에 꼽을 만큼 곤욕스러웠던 경험이 아닐까. 물론 면접의 과정을 넘기고 꽤 스피킹 실력이 늘긴 했다. (쓸모없는 공은 없다.)


원어민 발음을 하는 순수 캐네디언과 그냥 가벼운 잡담으로 정치외교나 경제철학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려면 아주 일찍 이민을 온 1.5세나 2세처럼 되려 한국말이 서툰 사람이 아니고서야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남의 나라 말이 쉽게 툭툭 나올 정도로 되려면 언어 영역에 천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죽기 살기로 영어만을 위하여 외로움은 조금 감수하더라도 원어민들 속에 들어가 눈뜬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아니 생각도, 노래도 꿈까지도 오로지 영어만으로 산다면 그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엔 이미 언어에 핸디캡이 있는 이방인들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각자의 레벨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만을 위하여 고군분투하기엔 빵빵한 재원이 깔려있지 않은 이상 당장 먹고사는 문제부터 눈 앞에 걸려있어 올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떤 이들에겐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영어는 평생을 끌고 가야 할 이민자들의 일기장 같은 귀찮거나 힘들면 미룰 수 있는 끝나지 않을 첫 번째 숙제와 같으니까.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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