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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25. 2019

집을 판다는 집주인의 통보

아! 내 집이 아니었었지. 

이민생활 5년을 꼬박 살았던 월세집


시세보다 600불(한화로 50만 원 정도)이나 저렴하게 살고 있었기에 일이 년 정도 더 살다가 내 집을 마련해서 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찰나였었다. 하긴 요새 콘도(한국의 아파트 형식)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집주인 입장에서는 팔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수를 써서라도 시세에 맞게 렌트비를 올릴 수 있었음에도 집주인은 5년 내내 법정 상승률을 꼭 지켜 2퍼센트만 적용시켜 올려 받았다. 돈 욕심이 그다지 없는 돈이 아주 많은 집주인을 만난 것에 복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결국엔 이런 통보를 받다니. 


집주인으로 부터 통보를 받기 전까지 내 집이라 생각하고 살았나 보다.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랜드로드(집주인)가 집을 팔려고 마켓에 올려놓으면 테넌트(세입자)들은 최대한 집을 보여주는 것에 협조를 해야 한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때 24시간 전에 꼭 노티스를 주는데, 그 시간에 맞춰 깨끗하게 치워놓을 필요가 있다. 하루에 한 팀 혹은 두 팀씩 보고 가는 일이 생기니 내가 렌트비를 주고 당당하게 살 권리 있는 집이지만 옷도 편하게 입을 수도 없고 마음대로 어질러 놓지도 못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심하게는 냄새나는 음식은 하지 못하게도 한단다. 차라리 빨리 팔려버려서 귀찮음을 좀 덜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유목민으로 살 것인가,
모기지의 노예로 살 것인가


캐나다 생활 중 가장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것은 렌트비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금액의 렌트비는 영어만큼이나 적응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 지방 출신이지만 분명 이 정도의 금액이라면 서울에서도 부촌에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비싼 렌트비를 생각하면 집부터 우리 명의로 사서 담보 대출로 그 돈을 갚아나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처럼 쉽게 살 수 있는 집은 우리 형편엔 아직까지는 없다. 스무 평 남짓한 우리 집은 현 시세로 60만 불, 한국 환율로 따지면 5억 5천 정도이고 거기에 매달 내야 하는 관리비 역시 50만 원 정도라 우리가 집을 사게 되면 되려 담보대출 원금, 이자에 관리비까지 대략 300만 원 가까운 돈이 오롯이 집을 위해서 지출하게 된다. 우리끼리 얘기하는 숨만 쉬어도 나가야 하는 모기지의 노예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을 사는 바이어가 세입자를 유지하려고 하면 우리는 법적으로 이 집에서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지만, 바이어가 입주를 원한다면 우리는 60일 노티스를 받고 새로운 집을 구해서 나가야 한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만 하는 우리는 세입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음에 유목 이민자 같은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남편과 머리를 싸매고 수 일을 고민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사라는 변수가 생겼고, 변수로 인한 생활비 지출이 몇 백 불이나 올랐기 때문.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도 탁 맞아떨어지는 정답은 찾을 수 없었다. 당장 내 집을 마련할 형편도 안되거니와 그렇다고 비슷한 렌트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고(새 바이어가 세입자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굳이 현 시세에 맞춰 비싼 렌트비를 지불하는 곳으로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우리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쪽으로라도 결론이 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일단은 기다리고 길이 정해지는 데로 액션을 취하면 된다. 


이민 생활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유독 한국인들이 자기 명의의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명의에 애착한다기보다 늘 집주인의 결정 여부에 따라 이사를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 이민자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우리는 뿌리가 깊지 못한 삶을 사는 느낌을 안은채 살아가고 있기에 이리저리 끌려 다닐 필요가 없는 온전한 터전이 필요한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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