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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15. 2019

젊지 않은 이들의 꿈.

나이는 핸디캡이 아니다. 

연륜 있는 그녀와의 인터뷰 

전 직장에서 소히 말단 신입 레벨의 직원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아도 눈가 주름으로 대충 가늠이 되는, 중년의 길목에 선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그녀는 연륜이 묻어 나오는 능숙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긴장보다는 노련함으로 질문 하나하나에 답을 하는 그녀의 담담함에 묵직한 내공까지 엿보였다. 


이제는 손이 조금씩 덜 가는 고등학생 아이들을 둔 워킹맘이라고 첫 소개를 한 그녀는 은퇴를 생각하는 시점까지 이어가야 할 커리어를 고민하다 어렵게 지원한 자리라고 했다. 나보다 적어도 열두세 살은 많아 보이는 그녀와의 인터뷰 시간은 아주 흥미로웠다. 여기까지 오게 된 그녀의 사연은 고사하고 십 수년 뒤 비슷한 상황의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그녀가 애써 감추고 있는 긴장감에 고스란히 이입되었기 때문이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오십이라는 숫자의 나이를 맞닥드릴 시점에서 그녀와 같은 도전이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말이다. 


천천히 본인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그녀를 보면서 나에게도 다가올 은퇴와 노년의 삶을 이제부터라도 가볍지 않게 생각해야 할 일이 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 어른들께서 흘리듯 하신 말씀들로 아이들 커가는 것 보니라 정작 본인들이 늙어가는 것은 모르고 살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꼭 채찍질받으며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뛰어서 일까. 큰 그림을 그리기엔 하루하루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코 앞이다. 


토론토 다운타운 디스트릭 디스틸러리


막연하지 않은 꿈

워킹맘으로 이루어진 모임의 지인들과 가끔씩 나누는 술자리에서의 소소한 대화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살림 걱정들이지만 꼭 빠지지 않는 것은 평균 나이가 사십이 넘는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생'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를 입에 올릴만한 인생의 중반부에 서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은 굉장히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은퇴까지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계산이 필요로 하고, 현재하고 있는 일이 은퇴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꿈이 열두 번도 바뀔 나이는 지나버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 한 만학도가 되어 의사, 변호사가 되는 기적을 꿈꾸기보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를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플랜(plan)을 만들어야 한다. 각자의 나이, 경력, 여건 등을 고려하여 최소한의 위험부담으로 만들 수 있는 5년 후를 위한 우리의 plan은 디테일해야 할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 했던가. 


삶을 나누고 공감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이 모임의 사람들 안에서도 가던 길 열심히 갈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공유하는 미래에 대한 작은 불안감들은 이 각자도생 속에서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은 분명하다. 누군가 대신 길을 정해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자의 길에서 동반되는 고민들도 모두 각자가 짊어지어야 할 무게이기 때문에. 


새해 첫날이 되면 종이 한 장 꺼내어 썼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매일 일기 쓰기', '책 30분 읽기'등과 같은 소소하지만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계획을 만들던 시절을 생각하며 우리가 이토록 힘들게 고민하고 있는 지금이 묵직한 현실임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다. 잘 달리던 길을 갑자기 방향을 틀어 엉뚱한 길로 갈 일은 드물겠지만 가던 길이라도 잘 달리며 조금이나마 나은 미래를 꾀하는 우리에게 토닥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스트릭 디스틸러리 아트 페스티벌





선선해진 계절을 핑계로 휴대폰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몽땅 가을에 맞게 바꾸고 싶어 졌다. 유튜브 검색으로 가을에 어울리는 노래를 추천받아보지만 결국에 다운로드한 곡들은 모두 세월이 한참 지난 유행가들 뿐이다. 친구 말로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노래는 듣지 않으려는 습성이 생긴다고 했다. 하긴 나만 보아도 우연찮게 듣게 된 귀에 확 박히는 좋은 신곡이 아닌 이상에는 웬만하면 알고 있는 곡들 안에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굳이 익숙함과 편안함을 포기하면서까지 공감하지도 못할 유행들로 나의 적막을 깨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서른 중반이 지나면서 새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소한 신 곡 하나도 쉬이 듣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쌓여가는 나이가 실감이 된다. 이제는 한 두 살을 더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신경을 쏟기보다 구체적으로 앞을 내다보아야 하는 시점이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연속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나의 나이에 맞는 돈벌이와 성취 중 어떤 것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할까. 성공이라는 허무맹랑한 단어보다도 당장에 돌아올 내일과 무거운 눈을 억지로 떠가며 일어나야 할 내일의 아침이 더 가깝기에 의미를 찾는 것은 조금 미뤄두고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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