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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11. 2019

잘 있으세요, 나도 나가렵니다.

캐나다 첫 한인 직장의 기억, 아니 악몽이여!

처음 구직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캐나다 직장의 이상이 있었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상하관계의 딱딱한 조직구조보다는 말 그대로 코 워커(co-worker)와의 유대관계를 기대했다. 불편하지 않은 복장과 대화, 자유로운 근무환경과 눈치 볼 필요 없는 퇴근 문화까지 상상하던 캐나다 직장 생활의 이상이 아주 무리는 아니리라 예상했지만 호기롭게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은 나의 항복으로 보기 좋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지켜보고 있다.



첫 출근날 사무실 한 구석에 일렬로 정렬된 책상들은 잊을 수가 없다. 전 직원의 자리가 창가를 보며 앉을 수 있도록 되어있었고, 책상 위 비치된 듀얼 모니터들도 일렬로 아주 가지런히 정렬되어 오너가 한눈에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특이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다섯 명이 전부이던 직원들이 나란히 앉아 일을 해야 하는 흡사 컴퓨터 학원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일을 하는 중에 오너가 말을 걸어오면 등 뒤에서, 정확히는 앉아있는 자세에서 정수리 위쪽 45도 각도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굳이 고개를 돌려 불편하게 올려다봐야 했다.


오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직원들의 등 뒤에서 하는 일이 잘 되어가는지 물으며 지켜보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본인 생각에) 간단한 일을 두고 헤매는 것이 보이면 곧바로 잔소리 폭격을 가했기에 본인에게 아주 유리한 구조로 짜 놓은 것임에는 분명했다.


카펫 위로 들려오는 오너의 구두 발자국 소리에 늘 긴장감을 가지고 일을 해와서 인지 다섯 번째 페이스텁을 받는 날이었던가. 만족스럽던 페이의 숫자보다는 고단했던 지난 나의 시간이 더 눈에 띄었다.



수 백번 넘도록 퇴사를 고민하며 받아낸 노동의 대가, 가치가 아닌 눈물겨운 손바닥만 한 표창에 더 가까웠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고작 5개월을 다닌 내가 두 번째로 오래 버틴 직원이란 말에 잘한 선택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쓸모없는 기록에 이름이 올려져 '멘탈이 생각보다 강하군.'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삼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꾸역꾸역 다니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갈 곳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는 모습처럼 보일까 괜히 자존감까지 미끄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 여기는 캐나다인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캐나다의 하늘은 웬만해서는 실망시키지 않는다.



M 이야기


3개월 반 정도 같이 근무했던 신입직원 M이 결국 퇴사를 했다. 스물다섯, 푸릇한 나이에 열정으로 시작한 M의 첫 직장 생활은 좌절을 넘어서 패배의 수준으로 끝이 났다. 경력이 전혀 없는,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직업을 잡기가 굉장히 힘든 사정상 대학 졸업장 외엔 아무것도 보여줄 것 없던 M 나름의 무기는 2주간 열정 페이마저도 포기한 채 무급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무급 인턴을 자처할지라도 레주메에 넣을 경력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앳된 얼굴에 어색한 오피스 복장을 한 스무 초반의 M의 긴장한 모습들이 안쓰러워 많이 도와주고 싶었지만, 시시때때로 신입직원의 동태를 살피는 오너 덕분에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너에게 M은 자칭 무급이었던 단 2주만이 흡족했었나 보다. 무급 기간이 지난 후 (유급의 시작)에는 정말 처참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깨지고 부서졌다. 구조라고 할 것도 없던 작은 오피스 안에서의 하늘을 찌를 정도로 위화스러웠던 오너 천하는 옆에서 보기가 너무 힘들었었다.


M이 버티어 낸 3개월이란 시간이 그에게 얼마큼의 쓴 맛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귀한 이 작은 오피스에서 한 번에 사직을 수락해버린 것에 자신의 쓸모를 들어 행여라도 실망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다. 식은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M 생각에 꽤 오랜 시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응고된 석 달의 서러움을 사표에 꾹꾹 눌러 담아 멋있게 던지며 나오고 싶었지만 고단수의 오너는 마치 해고의 꼴로 그의 퇴사를 수락해버려 마지막까지 그의 꼴은 말이 아닌 모습이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사회의 첫 쓴맛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젊은 직장인의 패기가 허무하게 꺾이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후 향했던 나의 자리는 더욱 지옥으로 다가왔다.



M에게) 사회생활 열 배는 더 많이 한 선배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 네가 느끼는 쓴맛은 그냥 얻은 것들이 절대 아니야. 패배한 것이 아니라 더 견고해지고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여도 충분할 거야. 힘내자. 사실 먼저 나간 네가 너무 부럽다.



색감 보정이 전혀 필요 없는 하늘색





제 깜냥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과중한 업무량, 한국보다 더 빡빡했던 시간 구조와 조직이라고 표현할 것도 없던 작은 오피스라 대부분의 일을 중간 관리자 없이 직접 오너와 대면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도 결정적으로 퇴사를 마음먹었던 이유는 일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코인 오락기처럼 '내가 돈 주잖아. 그럼 너는 하라는 데로 해'라는 무언의 압박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나의 인적 재능을 마음껏 활용당하며 말도 안 되는 오너의 감정 쓰레기통은 되어줄 필요가 없었다.


태평양 건너와 굳이 모국어를 쓰는 회사를 지원했던 일 년 전 나의 선택은 매우 후회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가슴속에 품고 다닌 사직서를 내던지고 나온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퇴사라는 최후의 말을 토해내며 두려움과 희열감에 심장이 뻣뻣해짐을 느꼈지만 이성의 끈을 끝까지 부여잡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나오지 않은 것에 상당히 만족을 했다.



'왜 그만두려고 하는가요?'

'더 이상은 제 깜냥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무모한 퇴사 길을 미화하며 지옥 같던 캐나다 첫 직장으로부터 무사히 탈출했다.




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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