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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10. 2019

이민의 이유? 글쎄요.

나도 궁금한 진짜 이민의 이유

삼 개월 전쯤일까. 하굣길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왜 코리아에서 안살고 캐나다에 왔어?"


아직은 어린 아이 입에서 저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조금 놀랐었다. 외국 생활을 하다보면 새로운 인연들과 통속 명보다도 더 많이 오고 가는 질문 중에 빠지지 않는 '이민을 선택한 이유'에 관하여 아이가 물어보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떠한 대답을 들려줄지 기다리는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가 궁금해하는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속시원히 대답이 나올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앞으로도 살 곳은 캐나다이지만 아이가 태어난 고국을 부정하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은 궁금증을 해결해주고자 일차적인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당시 선택권을 가지지 못했던 아이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들어 경쟁구도가 심한 교육 상황을 늘어놓으니 아이는 많이 놀라워한다. 겨우 한 두장씩 받아오는 학교 숙제에도 푸념을 하기 일쑤라 빡빡하게 돌아가는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 상황을 듣고는 정말 surprise 한 표정을 짓는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든 아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민행을 택한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치, 교육, 사회 부조리 등 진부한 이유들의 나열이 아닌 진실게임처럼 말할 수 있는 궁극적이었던 이유를.




한국이 싫었던 것은 아니야.


짙은 회색 같던 유년시절과 손에 꼽을 만한 몇 번의 고비들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의 삶은 평범했지만 그럭저럭 살만했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과 취업,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까지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고 적당한 신혼생활 후 얻은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굳이 빈틈을 찾을 필요가 없는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나라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간혹 사람들이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고 답을 했지만 사실은 뻔하게 흘러갔을 미래가 지루해질까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할 수 있다면 도전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단순한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도 없지 않았지만 일 년에 일 이백씩 오르는 연봉에 만족하며 눌러앉기엔 우리의 젊음이 아깝기도 했다.


가끔 캐나다행을 포기한 후 이어갔을 한국에서의 생활을 상상하기도 한다. 묵직한 성격의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서 과장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담보대출은 어느 정도 갚았을 거야. 어쩌면 더 높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겼을 수도 있겠지. 외동인 우리 아이는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며 좀 덜 외롭게 크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나열하다 보면 한국도 꽤 장점이 많구나. 더구나 말을 버벅되어 억울한 경험을 당할 일도, 피부색에 주눅이 들어 움츠러들 일도 없었을 텐데.


이 곳, 캐나다가 모국인 사람들에 백 퍼센트 동화되어 살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포기했을 삶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깊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행여 지금을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아 불필요한 망상을 멈추곤 한다.


캐나다 토론토 다운타운의 CN타워





이유를 만들어가는 이민 생활


출국 직전까지 우리 이민 생활의 부정적인 끝을 예상하던 지인들에게


 "살아보고 아니면 돌아올게"


라며 괜히 쿨한 척 귀국에 대한 여지를 두었었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본 이민 생활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차선책이기도 했다.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 어느 정도 살아야 잘 정착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공항에서 처음 대면했던 이민관의 Good Luck 이란 마지막 한 마디를 의지하며 좋은 기분으로 캐나다 땅을 았던, 말도 안 되게 맑은 하늘과 사방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지평선은 우리가 처음 마주했던 캐나다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 날의 날씨, 호흡이 편했던 공기가 첫 번째 우리 이민의 이유가 되었다.


5년쯤 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캐나다 생활의 장점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이 곧 이민의 이유로 이어질 수는 없다. 생각하는 삶의 가치, 이민 생활의 완성도는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삶과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풍요로움은 일부 포기하였어도 열심히 뛰고 있는 옆사람을 의식해야 하는 피곤함도 많이 내려놓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 역시 내 삶을 타인의 것에 잣 대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몇 년의 이민 생활이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성공에 대한 조급함, 아이를 남의 눈에 근사하게 뵈고 싶어 하는 욕심, 실패를 나누지 못하는 자존심은 꽤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그것이 꼭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와 내 가족이 캐나다 삶에서 만족하는 부분임에는 틀림없기에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이민의 이유가 되었다.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는 우리와 같은 이민자들은 사실 이 곳이 한국인지 캐나다 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한국에서는 말이야....'라는 말로 본인 현실의 불만족을 잘 포장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만족은 그 크기도 길이도 전혀 가늠할 수 없기에 우리가 먹은 마음의 정도로 기준할 수 있지 않을까. 살다 보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곧은 기준마저도 점점 유해짐을 느낀다. 아직은 캐나다 이주 후의 삶을 잘했네 못했네로 결론짓고 싶지는 않다. 살아보니 생겨나는 단점들이 후회가 되고 장점들은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01화 '캐나다 이방인'이란 수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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