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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주 Nov 09. 2019

'캐나다 이방인'이란 수식어.



왜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는데?



남편은 내가 블로그(브런치)를 하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지만 첫 번째는 기록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부득이하게 생긴 여유시간(직장을 옮기면서 오후에 출근을 한다.)에 조금이라도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자주 찾아오지 않는 여유인데 푹 쉬거나 즐기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강박이라고 말을 한다. 남편이 생각하는 쉼은 소파에 가만히 누워서 리모컨과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있는 행위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쉼은 바빠서 하지 못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즐기는 것이라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남편에게 '일종의 강박' 이라며 잘라서 정의를 내려줬다. 어찌 되었건 주 7일을 달리던 나에게 생긴 여유는 충분히 달릴 수 있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손발이 묶여 주저앉아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것이 강박이라면 그래, 나는 강박증 중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남편이 단정한 강박의 의미를 제외하고 굳이 블로그를 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일단 글을 적는 것을 좋아했었다. 빼어난 솜씨라고 자부할 수 없지만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는 억만 가지 생각들은 글로 풀어내면서 하나둘씩 정리가 되는 것 같고, 생각의 끝에서 지어내지 못하고 있던 결론들도 하나둘씩 두곽을 나타내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말로 풀어내는 취미가 없는 나는 속으로, 손 끝으로 풀어내길 좋아한다.


컴퓨터 속 파일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자투리 글로 끄적인 흔적들이 꽤 많았다. 생각이 복잡할 때에 편한 대상을 불러내어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글을 적으면서 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다.


군더더기 첨언이 없는 오직 나만의 고민들로.




사진 성주



I'm a legal alien.



캐나다 이민 생활이 만 5년이 넘어간다. 무섭게 내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눈과 숨 쉴 때마다 폐가 얼어붙는듯한 매서운 추위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다. 처음 캐나다의 겨울을 맞이했었을 때 서른이 넘은 애 엄마가 울었더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나 여기 추워서 못살겠어"라고 엉엉 울었더랬다. 겪어보지 못한 추위가 너무 무서웠고, 겨우 몇 달 겪은 이민생활에 꽁꽁 얼어붙은 자신감을 깨부수고 뛰어들기가 무서웠었다. 그래도 우리는 흔한 캐나다 구스 하나 없이, 제대로 된 부츠 한 켤레도 없이 몇 년의 겨울을 견디어 냈다. 캐나다의 겨울이 이젠 귀찮긴 해도 무섭지는 않아졌다.


버티어 낸 겨울만큼이나 우리가 이룬 것은 적지 않다. 남편과 나 둘 다 그럭저럭 직장도 괜찮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 영어 때문에 말문이 막혀 어디 가서 서러운 일을 당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캐나다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철저하게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꾀를 부리지 않는 이상 먹고 싶은 것 정도는 충분히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궁색하게 살았던 이민 초기 회덮밥에 넣은 회들로 대신 입을 위로하며 지낸 세월에 비하면 성공했다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기다 워낙에 유색인종 중심으로 형성된 동네에 살고 있어 정서적, 심리적 고립감도 크지는 않고 마음이 맞는 지인들도 많이 생겼다. 일부러 피하지만 않으면 아주 외롭게 지낼 일도 없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5퍼센트 정도의 공허함은 늘 공존한다. 이런 마음은 남편과도 친한 친구와도 나눈 적이 없어 그들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다. 항상 어딘가 한 칸이 비어 있는 기분이 든다. 한국 소주를 반주 삼아 매운 닭똥집에 한국 예능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어도 꼭 어디 한 곳에서 새고 있는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어찌 발은 담갔는데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겉 돔이랄까.




"등 떠밀어 간 것 아닌데... 잘 살아야지"


그러게, 누가 비행기표 대신 끊어줘서 온 것도 아닌데 외롭다는 표현이 웬 말일까. 선택하지 않았다면 죽는 날까지 느껴보지 못했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한 후회 중 그 후회를 이겨낼 자신이 더 없을 것 같아 선택한 캐나다행이었다.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듯 모든 것이 다 시작이었기에 지금과 같은 공허함과 무료함으로 비치는 향수는 느낄 새도 없었다. 뒤쳐질 틈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 일정 속도 이상으로 매일을 달려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몇 년을 숨 가쁘게 살아와서인지 잠깐 느끼는 지금의 여유가 감사하기보다 되려 두려울 정도로 허함을 드러나게 만든다. 많은 고민 끝에 모아지는 결론은 '향수'가 시작된 듯하다. 실은 시작이 아니라 이제야 꺼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 이리라.


스스로 붙인 이방인이란 수식어를 가지고 향수에 허덕이며 사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를 모순으로 만들어 버릴 것 같다. 막연한 이국 생활에 대한 이상으로 시작된 이민길은 아니었으니 이겨낼 방법은 딱히 없다. 그저 견디어 내는 것일 뿐. 그래서 오늘도 4인용 식탁 한편 나를 위한 자리에 앉아 글로써 담아내는 것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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