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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Mar 16. 2021

특이점이 온다.

: 학교폭력에 관한 짧은 생각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을 사고, 커피숍에 왔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분이 어찌나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너무 컸다. 도무지 책이 읽히지가 앉아 이어폰이라도 낄까 생각하다 그대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왔단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그녀'잘 지내지?'라는 어색한 안부와 함께 웃음과 장난 섞인 '사과'를 했다고!

'누구지?' 생각하다 보니 중학교 시절, 자신을 왕따로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SNS로 타고, 타고 들어가다 보니 그녀는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옷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유추해보건대... 요즘 학폭 논란이 워낙 이슈다 보니 팔로워가 많은 그녀 역시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과거 잘못했던 사람. 그러니까 자신에게 부랴부랴 사과를 한 거다.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억울함이 밀려들었고, 화가 났고, 그녀가 지금보다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왜? 더 유명해지면 너도 폭로하게?

"어. 진짜 처음엔 그러고 싶었어.

"그런데?

"이런저런 기억들이 모조리 생각났는데...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게 정확한 기억인지 자신이 없더라. 그리고 옷가게 하면서 나한테까지 연락한 거 보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거잖아. 그 생각하니까 그냥 웃기더라.




2021년은 학교폭력이 그야말로 핫이슈다. 옆 테이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친구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 같은 반으로 만나 녀석이 결혼하기 전까지 불쑥불쑥- 만나던 친구다. 녀석은 방송국에서도 섭외가 왔을 만큼 '꽃미남'에다 운동도 잘했고, 똑 부러졌다. 그리고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한테도 인기도 많았다. 그런데 군대에 다녀온 후, 녀석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녀석이 간 군대는 힘들기로 소문난 곳이었고, 그곳에서 선임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단다. 그 사건으로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고, 함께 기합을 받던 동기들은 하나둘 친구를 비난하며 멀어졌고, 결국 혼자가 됐다. 선임들에게 발톱이 피멍이 들어 빠질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고, 그곳에서 친구는 멍청이가 됐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선임들은 제대를 고, 친구도 제대를 했다.


하지만 친구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성격이 바뀌었고, 종종 힘들어했다. 그런데 우연히 전해 들은 소식.

"걔, 사람 좋게 잘 살더라"

SNS를 통해 '좋은 사람'으로 잘 살고 있는 선임의 모습을 보니 참을 수 없을만큼 화가 치밀었다고.




친구의 선임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그는 몇 해 전 촬영했던 병원의 담당자다.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제약도 많고, 촬영하기도 힘든데 담당자가 주연배우의 군대 선임이라 꽤나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촬영 당일 주연배우에게 '덕분에' 좋은 장소에서 촬영을 하게 됐다며 상황을 설명하며 그 담당자의 이름을 이야기했는데... 순식간에 얼굴이 안 좋아졌다.


그 인상 좋아 보이는 담당자가, 그렇게 서글서글 성격이 좋던 담당자가... 주연배우에게는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도 표정관리가 안 될 만큼 자신을 많이 괴롭혔던 사람이었다. 결국 주연배우는 자신으로 인해서 촬영팀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촬영하는 동안 담당자와 안 부딪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상황은 예상 못한 듯 담당자는 자신이 도와준 것에 대한 생색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자신이 유명 배우와 '친한 사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건지 계속해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졸라댔다.


결국 촬영이 끝날 때까지 담당자에게 '감정씬'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통제함을 이해해달라며 양해를 구했고, 기분이 상한 담당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아마 그 담당자는 유명해지니 변했다며 주연배우를 험담하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그 병원의 담당자와 친구를 괴롭혔던 선임들은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잘 살고 있겠지?




특이점이 온다


KBS '대화의 희열' 중에서


요즘은 김숙이 '대화의 희열'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를 많이 생각한다. 

예전에는 외모를 비하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개그 소재가 잘못된 줄 몰랐다고.

나뿐만 아니라 작가, 피디들 모두!

선배들이 그렇게 했었고, 그런 개그를 하면 '모두'가 웃어줬으니까.


그런데 어느 누군가의 용기 있는 행동들로 인해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세월이 흐른 지금, 문득문득 지난날 무지했던 자신을 후회한다고.

누가 시키더라도 내 입에서 나온 말, 내 몸에서 나온 행동들은 결국 다 내 몫이고 내 책임이라고.

 

"특이점이 온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SNS를 통하면 한 다리 건너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비밀'이, 감출수 있는 것들이 없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이슈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누군가는 꼭 알았으면 좋겠다.  

무책임한 행동으로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나중에 내 눈에선 피눈물이 난다는 것을.

'그때는 다들 그랬어''나 정도는 괜찮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그리고 반성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자기 자신한테 생채기 내는 일이 없기를.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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