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에는 '케이(=개)'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개를 묶어두고 키우던 시절이 아니었다. 케이는 늘 대문 앞에 엎드려있었다. 그러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웡웡~하고 짖어댔다. 나는 그런 케이가 무서웠다. 그래서 최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걷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그 뒤를 쫓아가기도 했다. 그마저도 어려울 땐 골목을 빙~ 돌아 집에 들어갔다. 학교가 끝나면 늘 오늘은 케이가 없었으면 하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 입구에서 다른 날보다 더 크게 웡웡~ 거리는 케이의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한숨을 크게 쉬고, 슬쩍 케이 쪽을 봤는데... 맙소사! 남동생 다리를 케이가 물어뜯고 있었다. 남동생은 케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다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면 케이가 나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되자 옆집 아저씨가 나오셨고, 놀란 아저씨가 케이로부터 남동생을 구했다.
그날 저녁 남동생 다리에 연고를 바르는 엄마 앞에서 나는 내가 다친 것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남동생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케이가 언젠가는 나를 덮칠 수 있다는 공포에!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개를 만나면 저절로 몸이 굳고 움직이지 못한다. (그럴 일 없겠지만) 개가 나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
함부로 무례하게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일이다. 찬 바람에 코끝은 아직 시리지만 매일 집에만 있는 내가 걱정된 친구가 산책을 권했다. 그래서 집에서 멀지 않은 한강공원으로 막 들어서는데 하얀 개 두 마리가 미친듯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친구 뒤에 숨어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개들은 우리 다리 밑에서 파닥파닥 뛰는 물고기처럼 뛰어다녔고, 친구는 비명은 지르지 않았지만 나만큼이나 경직되어있었다.
친구는 개를 키우고 있다. 몇 년 전에 영화 촬영에 필요한 개를 섭외하기 위해서 유기견센터에서 개를 빌렸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고 개를 돌려주자 유기견 센터에서 한번 데려간 개는 다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는 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개를 버릴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고 있는 누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누나는 개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개를 키우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면 개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든다고 한다. 개를 키우면서 개에 대한 면역력은 조금 나아졌지만, 친구에게도 개는 아직 어려운 존재다.
12월의 늦은 밤, 찬 바람이 부는 한강공원에 내 비명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났다. 그때 껄껄껄~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단 쪽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보였다. 그가 개들의 이름을 부르자 개들은 그에게로 잽싸게 달려가 꼬리를 흔들어댔다.
"개줄을 묶으셔야죠. 이런대서 이렇게 풀어놓으시면 어떡해요"
"애들이야, 애들"
그 애들은 다시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친구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 친구가 개를 무서워해서요. 개 좀 잡아주세요"
"이 조금한 애들이 뭘 어쩐다고!"
개들은 다시 내 다리를 붙잡기 시작했고, 중년 남자가 다시 개들을 불렀지만 만만한 장난감(=나)을 찾은 개들은 더욱 신이 나서 왈왈~ 짖어댔다. 우리는 그곳에서 꼼짝하지 못한 채 중년 남자와 몇 차례 말을 더 오고 갔다. 그러다 내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중년 남자가 계단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누군지 알아?"
"알아야 해요?"
"내가 xx 대학교수야"
"그래서요?"
"나이도 어린것들이 무례하네"
"저 아세요?"
"뭐?"
"그쪽이야 말로 무례하네요! 왜 반말하세요?"
"그쪽? 아! 별싹수없는 것들을 다 보네.. 자식 같은 애들한테 너무들 하네 진짜"
"저희가 너무해요?"
평소엔 조용하지만 한번 핀이 나가면 말릴 수 없는 친구는 누가 무례한지에 대해 싸우기 시작했고, 싸움 중에도 내가 무서워하는 게 재밌는지 중년 남자는 개들을 붙잡지 않았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결국 근처 지구대에 전화를 했다. 그러는 사이 제 안방인양 뛰어놀던 그의 자식 같은 조금한 애들이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들며 우리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자기의 인맥을 자랑하느라 정신없던 중년 남자는 그제야 개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 개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들을 데려 오겠다고 하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지구대에 다시 이 상황을 알렸고, 그렇게 우리의 산책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이 났다.
개들은 잘못이 없으니까.
그 날 이후 난 한강 산책은 가지 않는다. 모두 다 그와 같진 않겠지만 또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진 않다. 사실 며칠 동안은 그가 일한다는 xx대학 게시판에 들어가서 그의 만행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겪은 그날의 공포를 그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남동생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누나는 왜 그렇게 개를 무서워해?
"케이 때문이지"
"아직도 기억해?"
"어제 일처럼 생생해"
그런데 남동생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케이한테 먼저 장난을 친 건 나였어"
"어?"
"나도 나중에 알았는데 케이가 맨날 누워있었잖아. 아팠던 거래"
그리고 보니 늘 같은 자리에 누워있던 케이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케이가 안 보이는 이유보다 집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생각했었는데 그때의 케이는 많이 아파서 예민했었고, 그 날의 케이는 잘못이 없었다.
"................ 그런데 그 개들은 찾았을까?"
"그러게"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날 어디론가 사라졌던 개들이 걱정됐다. 중년 남자가 다시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오는 건 싫지만, 그가 그 개들을 찾았길 바란다. 개들은 잘못이 없으니까!
지인 중 한 명은 15년 이상 키운 왕자(=개)가 아프자 본인이 아플 때보다 살이 더 많이 빠졌다. 또 전주 친구는 아들과 동동이(=개)는 동급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두 사람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개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무서워할 뿐이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머리와는 다르게 개를 마주치면 몸은 굳고 식은땀이 절로 난다. 이런 나도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모두 같지는 않음으로, 본인이 좋아하니까 다른 사람도 괜찮을 거다!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전에 함부로 무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