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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Dec 30. 2019

술은 어느 정도 마셔야 하는 걸까?

: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연말은 연말인가 보다. '연말이잖아요?'라는 구실로, '송년회'란 명분으로 평소보다 술자리 약속이 많아진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2주 전부터 잡은 약속이라 못 나간다고 할 수도 없어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약속 장소인 왕십리로 나갔다.

오후 2시기에 누군가 '브런치라도 먹을까?'라고 꺼낸 말에 열심히 브런치 맛집을 검색하다 결국 우리가 간 곳은 설렁탕 집이었다. 이유인즉 멤버 중 한 명인 전주 친구가 전날 응급실까지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응급실까지 갔다 왔는데.. 괜찮아?"

"괜찮지 그럼.. 애 낳고 2년 만에 술을 먹어서 그런가 술이 왜 그렇게 맛있냐? 종이컵에 따라 주니까 얼마나 마시는지도 모르고 마셨는데.. 눈 떠보니까 응급실이더라"


술은 어느 정도 마셔야 하는 걸까?

나는 영화일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만큼 술자리를 갖는 경우도 많다. 술은 일상생활에서는 몰랐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확장시켜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술을 잘 마시고 싶지만 나는 고작 맥주 1병이면 두통과 숙취로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러다 보니 20대에는 '너는 술만 잘 마셨어도 성공했을 거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술은 내가 잘 마시고 싶다고 해서 잘 마실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술자리에서 맨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술을 못 마시지만, 술자리 모임이 잦다 보니 늘 볼꼴 못 볼꼴을 다 보게 된다. 




그래도 이 정도 '양반'이다.

그날은 거리의 분위기도, 술자리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 어느 순간 친구 한 명이 쓰러졌다. 그 친구는 제법 덩치가 있는 친구였는데 술을 같이 마신 멤버들 중에 남자들도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잃은 친구를 도저히 옮길 수가 없었다. 그 술집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술집에 있는 '끌차'를 빌려 친구를 싣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그 친구는 번화가 한복판을 '끌차'에 실려 횡단해야 했다.


성남 친구는 술만 취하면 전화를 한다. 혀가 꼬이고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떠든다. 결국 '적당히 해라'라는 말로는 고쳐지지 않아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야만 전화를 끊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후배의 술버릇은 술에 취하면 술을 더 먹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먹으면 고성방가를 서슴 않는다.


그리고 평소에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롯데 친구는 술이 센 편인데도 불구하고 술만 먹으면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 술기운이 오르면 쌓아 두었던 감정 터다고 한다. 그러다 가까웠던 직장동료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고, 술을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도 하지만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술 마실 준비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 '양반'이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 헛개차 광고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2018년 초, 지방 촬영 중일 때 일이다. 예산이 빠듯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좋은 호텔에서 숙박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감독이 '술방'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니 편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는 거였다.(감독은 나름 얼굴 제법 알려진 감독이다.)  밖에서 사고 치는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듯하여 방 1개를 추가로 빌렸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면, 매일 감독을 포함한 배우와 헤드 스태프들이 그 방에 모여서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셔댔다. 촬영기사는 20살 이후 처음이라며 정신을 잃은 채 제 방으로 실려갔고, 여배우는 노출이 있는 원피스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 복도에 혼자 누워있다 스태프의 신고로 수습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숙소에서도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스태프 전원 숙소를 옮겨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아침 집합 전 아직도 술기운이 가득한 감독에게 그 술방으로 인해 닥친 위급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감독님, 술이 술을 마시는 건지 감독님이 술을 마시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조금만 자제 부탁드립니다."

"뭐 영화인이 그럴 수도 있지. 쫓겨나면 텐트 치고 자면 돼. 그 정도 할 수 있잖아?"

그 뒤로도 감독은 매일 술방으로 사람들을 불렀고, 매일 고개 숙사정하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호텔에서 내쫓기지는 않았지만 그 호텔은 다음에는 절대 영화인들을 받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비밀은 없다'

20살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 우리 매장에는 하루에 한 번씩 연락처 좀 달라는 메모를 받을 정도로 예쁜 JIN이 있었다. 12월 추운 겨울, 연말이라서 손님은 많았지만 연말이니까 매장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회식이 있었다. 수능이 끝난 후 홀가분한 마음이었던 JIN은 그날 사람들이 주는 술을 마음껏 마셨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는데 JIN이 매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날 회식이 끝나고 JIN은 몇몇 방향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술기운은 더해졌고, 결국 JIN은 옷에 '똥'을 싸고 말았다. 

JIN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었지만, 제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막차시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고, 다행인지 아닌지 JIN을 짝사랑하던 남자애 그곳에 있어 JIN의 똥을 치워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남자애는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상황이 워낙 큰만큼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상황이 워낙 큰만큼 '절대 비밀'은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 퍼졌다. 나는 그 회식자리 이후 JIN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예뻤지만'

'주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HA가 지난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참고로 HA는 27살의 건강한 청년이다.) 늦은 새벽 영화를 보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집 비밀번호를 계속 누르고 있더란다. 삐삐 빅- 신경이 거슬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위층에 사는 그녀가 쑤욱- 하고 말릴 새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와 욕실로 직행하더란다. 놀란 HA는 짙은 술냄새로 그녀가 만취상태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기에 일단은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이번엔 HA의 침대로 직행했다. 슬슬 화가 나 소리라도 지르려는데 침대 위의 그녀를 본 순간 HA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하의를 모두 탈의한 상태였다. HA는 그녀의 팬티를 찾을 새도 없이.. 일단 보이는 대로 바지만 추켜 올려주고 그녀를 미친 듯이 흔들어 깨웠지만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최근 통화목록을 찾았다. 그런데 최근 통화목록에는 아빠와 남자 친구가 있었고, 이 상황을 그들에게 알린다고 해서 HA의 결백을 100% 믿어줄 것 같지 않아 HA는 결국 그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아침에 잠에서 깬 그녀는 지난밤 상황을 듣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는 위층으로 올라갔고, 출근하기 위해 샤워를 하려던 HA는 욕실에서 그녀가 벗어둔 팬티를 발견했다. 남에 팬티를 그냥 버리기도 그래서 출근하기 전 쇼핑백에 팬티를 담아 그 집 문에 걸어놓고 나왔다. 그리고 가끔씩 집 근처에서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HA는 그날의 일이 떠올라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그리고 HA는 분명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HA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HA를 가해자처럼 보는듯해서 예쁜 누나들이 많이 살아 좋다던 그 빌라에서 이사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술은 많이 마시는 것보다 잘 마시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술이 세다고 해도 술잔을 내려놔야 할 때를 알지 못하면

누구나 개가 될 수 있다.


오늘따라 술이 술술 들어가니까!

오늘따라 술이 하나도 안 쓰니까!

오늘 함께한 사람들이 너무 좋으니까!

연말이니까! 신년이니까!

그러니까 딱 한잔만 더!


부어라 마셔라 취하자! 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때까지 마시지는 말자.

그리고 '필름이 끊기는 순간' 오늘은 별일 없이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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