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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Nov 22. 2021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 여행을 하면서 생각한 것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7박 8일의 여행이 끝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다 보니 문득,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


처음 여행을 시작한 건 첫 작품이 끝나고 난 뒤였다. 영화일이란 게 한 작품당 평균적으로 약 10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기간 동안 오롯이, 죽어라 일만 했기 때문에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보상'으로 시작한 여행이 직책이 올라가고,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잠시라도 떠나 있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도피'가 되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하는 거면... 집에 있는 거랑 똑같지 않아?"

작품이 끝날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내가 이상했는지 친한 언니가 물었다. 사실 나는 매번 낯선 곳으로 떠나지만 장소만 바꿀 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유명한 곳보다는 한가한 커피숍이나 책방에 있을 때가 많으니까 집에 있는 거랑 비슷하긴 하다. 심지어 하루 이틀 삼일 즈음 지나고 나면... 나 스스로도 생각한다.


'굳이 애먼 돈을 써가며...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그리고 5일 정도 지나면, 집에 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은 느리고, 다소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다 돌아온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별일 없었던 그 여행이 그리워진다.

그렇게 여행은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특별할 것 없는 이 여행이 나에게는 '보상'이자 '도피'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충전'이자 다시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명분'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하면서 생각한 것들.


# <남해>는 꼬부랑과 오르막길이 많고, 도로에는 안정장치가 거의 없다.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어디로 떠나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째서인지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남해>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결정함과 동시에 덜커덕- 숙소부터 예약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남해>로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은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바다! 를 보며 기분부터 달라진다던데... 나는 꼬부랑과 오르막길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기는커녕 초 긴장상태로 계속 운전을 해야 했다.


꼬부랑꼬부랑~ 꼬부랑과 오르막길을 계속 가다 보면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해질녘이 되면 잠시 차를 세우고, 눈앞에 펼쳐진 노을빛 가득 품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 동안의 고생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역시 '고생 없이 얻는 것은 없다.'는 말이 맞나 보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고 싶지만... 다시 출발, 아슬아슬하게 마주오는 차들을 피할 때마다 옆 벼랑으로 떨어질 거 같아 핸들을 꽉! 쥐고 운전을 한다. <남해>의 도로에는 생각보다 안전장치가 많이 없다. 그래서 잔뜩 긴장 속에 숙소에  들어와 지친 팔다리를 움직일 때면 '<남해>는 나랑 안 맞나?'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니 이 엄청난 길들도 익숙해지고 심지어 요령도 생긴다. 

역시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 익숙해진다'는 말이 맞나 보다.


# 불편함 속에 느끼는 소중함.

내가 있는 숙소는 원룸이지만, 방 4개가 쪼르륵- 붙어있어 방음에 약했다. 옆방 아저씨의 방귀소리를 들으며 내가 뀌어도 저 정도로 들릴까? 저 아저씨의 방귀소리가 큰 걸까? 잠시 생각해본다. 하염없이 계속되는 방귀소리를 잊기 위해 음악을 틀었지만, 나에겐 좋은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소음이 되지 않을까? 싶어 볼륨을 최대한 낮춘다. 귓속말처럼 소곤거리는 음악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게 된다. 

분명 매일 듣던 음악인데 조금 더 좋아진다.


결국 잠이 오지 않아 숙소에 있는 작고 낮은 테이블에 노트북을 폈다. 10분 즈음 지나니깐 엉덩이가 아팠다.

'하하, 이럴 줄 알고 방석을 챙겼더랬지!' 차에 가서 방석을 가져왔다. 엉덩이가 편해졌다. 아니 엉덩이만 편해졌다. 낮은 테이블 때문에 허리가 점점 아파왔다. '허허,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낮은 테이블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마땅히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리는 점점 아파왔고, 결국 노트북을 다시 접었다. 역시 집만큼 편한 곳은 없다. 집이 그립다.


# 실패 속에 얻은 깨달음.

떠나기 전, 밤을 새워서라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마무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뜻밖의 환경적 제약-낮은 테이블로 인해 허리가 너무 아파(?) 실패.

그런데 떠나기 전 '네가 좋아할 것 같다'며 선물 받은 책 <피플티 피플(정세랑 작가)>과 숙소에 놓여있던 책 <안녕한, 가(무과수 작가)>. 심지어 동네서점에 갔다가 홀린 듯 구입해버린 책 <스파이 프린-쎄스 이문영(홍유진 작가)>까지. 무려 3권의 책을 읽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욕심처럼 잔뜩 책을 가져갔지만 매번 읽지는 못했는데... 오랜만에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라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아서 당연하게 책은 안 읽힐 줄 알았는데... 안 읽힐 거라는 건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확신했던 것들도 때론 너무 쉽게 바뀐다.


# 의외로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럴 리 없겠지만... 여유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전원생활'을 하고 싶었다. 작은 텃밭을 키우며, 마당에서 책을 읽고, 때때로 집 앞바다에 나가 바다 멍~을 때리며... 조용하고, 느리게~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읍도 아닌 면. 시골 안에서도 시골인 이곳에 있다 보니... 시골의 낮은 도시만큼 분주했고, 바닷가 근처의 밤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걸 알게 됐다. 게으름뱅이인 나는 일단 작은 텃밭! 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겁쟁이인 나는 일주일이 지나도 적응되지 않는 창문을 때리는 바람소리에 깜짝깜짝 놀라 잠을 못 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배달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너무 생각지도 못한 변수다. 배달음식이 그립다니... 그동안 너무 당연해서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못하게 되자 엄청난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자연식보다는 인스턴트가 맞는 사람이었나 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나는 '전원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해서 좋아 보인다고 해서, 나 역시 좋아하는 건지는 잘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 과 함께 내가 '나는 이런 사람일 거야'라고 생각한 것과 진짜 나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이렇게 조금 떨어져서 나를 보면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여행의 진짜 좋은 점.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에만 담아뒀지만... 이렇게 여행이라는 핑계로 평소에 전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할 선물을 고른다. '어떤 걸 좋아할까?'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서 좋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그 사람과의 약속을 잡게 돼서 좋다. 자꾸 돈을 쓰게 되니까 다시 일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는 거 같아서 좋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떠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레고, 낯선 곳에서의 미묘한 긴장감이 싫지 않다.

불편한 것들이 하나둘 생길수록 원래 가지고 있던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오롯이 혼자 있다 보면 함께 했던 사람들이 더 소중해진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지언정 조금은 나에게 너그러워진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다음엔 또 어디로 떠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굳이 떠나야 하는 걸까?' 

여행을 하면서는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지만!!

여행을 끝내고 난 뒤에는 '여행은 언제나 옳았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러니 지금 멈춰있다면- 잠시 떠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행#이게 참 좋은데#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데#가봐야 아는데#일단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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