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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Nov 12. 2021

나는 INFJ다.

: MBTI란 걸 해보았다.


요새는 혈액형이 아닌 MBTI로 성향을 파악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굳이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연락도 자주 하지 않는 남동생이 보채듯이 해보라는 말에 잠들기 전 누워서 몇 가지 질문에 체크를 했다. 나는 INFJ가 나왔는데... "선의의 옹호자"유형이란다. 가장 흔치 않은 유형으로 인구의 채 1%도 되지 않는.... 어쩌고 저쩌고의 긴 설명을 읽는데 '오늘의 운세'보다도 안 맞는 거 같았다.


"뭐야 이건... 나랑은 안 맞는 거 같아"

"저 이름은 버려. 나는 무슨 탐험가 나옴. 그냥 MBTI 보면 대충 성격을 알 수 있음. I는 내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거고, E는 외부에서 얻는 거임. 우리는 딱 I 지"

"으음... 그르치"

"그런데 누나가 N인게 말이 안 되는데... S는 현실적이고 경험을 중시하고 일관성 있는 거고, N은 상상하는거 좋아하고, 사후 세계 믿고 막 이런 건데... 보통 S는 나무를 보고, N은 숲을 본다 함."

"으흠... 그런 거라면 나는 S와 N의 중간 즈음인데?"

"그다음 F는 과정을 중시, T가 결과적인 거 중시. 마지막 J는 체계적, P는 즉흥적.  난 ISTP인데... 누나랑 완전 반대야!"

"으흠... 그으래"

 



내가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 듯하자 몇 분후, 남동생은 INFJ에 대한 짧은 팩폭이라는 파일을 보내왔다.

- 소심층. 자상하고 배려 있어 보이나 세상 위험한 족속(본인 속마음 말 안 하고 어떤 사실을 알고 있어도 음흉하게 조용히 하고 있음) 표현을 안 할 뿐 절대 뭐에 설득 안 당함.

- 음침 오타쿠. 집순이인데 계획 세워서 여행 감.

- 생각이 너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함.

- 내가 피곤해도 남들 배려하는 게 마음 편함.

- 새로운 일, 새로운 만남을 싫어함.

- 절친이나 가족에게도 선이 있음.

- 강박적인 완벽주의자.

-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과하게 생각함.

-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가면을 씀.


"뭐야 이건... 완전 나잖아 ㅋㅋㅋ"

"쉽게 말하면 누나는 내향적이고, 이상적이고, 과정이 중요하고, 계획적인 거임"

"쉽게 말하면 나는 그냥 답답한 사람이네..."

"맞네 ㅋㅋㅋ"

"니꺼도 보내봐!"


ISTP는

- 노력에 비해서 효율이 높음. 시험은 벼락치기.

- 다른 사람에 별 관심 없음. 위선과 가식이 없음.

- 틀에 박힌 생활은 싫음. 논리적이고 정확한 것을 중시.

- 내 일에 간섭받는 것을 싫어함. 사생활에 매우 민감하여 사생활 존중을 중시함.

-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큰 틀만 짜는 편. 말에 비해 행동은 작음.

- 단순한 생각을 많이 함. '그런가 보다~~ 라는 마인드'. 매사에 귀찮아하는 편임.

-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하지만 현실 파악이 빠름.

- 정의감이 있어 직설적인 말로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함.


"노력에 비해 효율이 높은 귀차니즘. '그런가 보다~ 마인드' 완전 너네ㅋㅋㅋ"

"첨에 봤을 때는 막 다른 거 같았는데 거의 다 맞네. 재밌지 않음?"




조금 재밌었다. 나는 INFJ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만남이 잦은 일을 하다 보니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그야말로 집순이다. 집순이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그리고 여행을 할 때는...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계획하고 또 계획한다. 하지만 그걸 계획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계획대로 뭘 해본 적이 없다.

 

여행뿐만이 아니라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자나 깨나 일 생각만 하느라...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없는 걱정도 만들어서 한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현재에 충실하자고 말하면서도, 당장 내일 뭐 먹을지 같은 사소한 것을 시작으로 뭘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어제의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뒤로한 채... 오늘의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어제의 나는 도대체 뭐한 거냐? 앞으로는 미리 생각 좀 하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어김없이 그 시간이 오면 또 내일의 나는 뭘 할지.... 등등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야말로 '나는 답답한 사람이다.'


물론 그러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종종 '완벽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완벽한 적이 없는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욕하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성향?! 때문에 듣는 말인듯하다.

나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니까 왠지 오늘의 걱정도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 나는 저런 사람이구나! 그리고 너는 이런 사람이었어!'

MBTI를 통해 나를 그리고 남동생을 조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남동생과는 같은 부모, 같은 집. 그러니까 같은 환경에서 몇십 년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우리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자연스럽게 서로 싸우는 일은 만들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가끔씩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들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만 하는데...

그건 아마도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괜한 걱정보다는 그냥 앞으로도 각자, 각자의 성향대로... 잘 살면 되는 거겠지.


MBTI.

남들 다 한다 해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를 알고 남을 알면 조금은 '그런가 보다-'로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지겠지?

문득, 다른 사람들은 무슨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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