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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Feb 27. 2020

갑자기 툭 튀어나온 '욕심' 때문에

: 기회는 선택되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졌다.


월요일, 친구의 소개로 드라마 쪽 면접을 봤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면서 드라마 쪽에서일을 해보고도 싶었지만 주변의 만류도 있고, 다시 처음부터 적응하고 배우는 게 겁이 나서 '굳이'라는 명목을 붙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화일을 하면서 직책이 올라가고, 그만큼 급여도 올라갔지만 그에 따른 책임감 또한 높아지다 보니 최근에는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내겐 너무 버겁기만 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다시 내려가고 싶다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에게 드라마 기회이자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전화를 받고, 월요일 면접 때까지 드라마 쪽 시스템과 시세(?)에 관해 알아보고,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궁금한 것들을 적어 갔다. 다행히 나를 면접을 보는 피디 역시 영화를 하다 드라마로 넘어오신 분이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들이 오갔고, 드디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럼 생각하신 제 급여는 어느 정도인가요?"


피디는 상황과 사정을 늘어놓으며 회사에서 생각하는 금액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당연히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적었지만 그래도 알아봤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건 드라마가 처음이셔서 회사에서 생각하는 금액이고요. 신입보다야 일을 잘하실 테니 000만원까지는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 입이 먼저 움직였다.

"드라마라는 환경, 제가 맡은 직책 그리고 업무가 달라져서 이전보다는 적게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말씀하신 대로 영화와 드라마가 큰 맥락은 다르지 않으니 경력을 조금이라도 인정해주신다면 000과 000만원 사이로 논의해보신  가능한 금액을 다시 말씀 해주세요"


웃으며 면접을 끝내고 일어났지만, 그날 밤 바로 후회했다. 사실 내가 맡을 직책과 업무에 비해서 너무 많은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처음 제시한 금액도 못할 건 아니었는데 예상치 못한 피디의 추가 발언에 나도 모르게 더 받을지도 모른다는'욕심' 이 생겨버린 것이다.


내가 그 피디 입장이었다면 나 같은 사람에게 절대 그 금액을 주지 않을 거다. 이제 와서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 언제나 만족을 모르는 이 놈의 '욕심'이 문제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욕심' 때문에 기회는 선택되지 못한 채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음이 산란할 때 필요한 건 '요가'다. 요가는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프기만 한 몸뚱이 때문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가볍게 시작했지만 유일하게 내가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운동이자 수련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빳빳하게 굳어진 몸과 디스크를 핑계로 쉬엄쉬엄 움직인다. 그런데 간단 보이는 동작만으로도 땀 한 바가지 쏟아지고 기분이 나아진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머릿속에 그득그득하기만 한 생각들을 수업이 끝날 때쯤엔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다. 그래서 연기처럼 사라진 기회에 대한 미련보다 나를 되돌아보고 비워내기 위한 '요가'를 했다.


요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독 매일 하던 선생님의 말과 함께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내 '다짐'들이 생각났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힘들면 언제든지 쉬어도 됩니다.

오늘 나의 컨디션에 따라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만 멈춰도 큰일이 날것처럼 조급해 한다는 걸 알기에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었다.

힘들어도 쉬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몸을 이제는 조금 쉬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 했었다.

'무리하지 마'라는 말보다 '너는 왜 남들처럼 더 높이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내려올 생각을 하냐'는 핀잔을 듣지만 나는 나의 컨디션과 페이스에 맞춰 무리하지 않기로 했었다.

 

렇게 내려놓았자고 다짐했던 '마음'이 몸에 어버린 더 가지고 싶은 '욕심'때문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그 '욕심'을 선택하면 나는 다시 힘들어질거라는 걸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있다.

'욕심'은 언제나 내가 편해지기를 훼방 놓는 것 같다.


"몇 차례 호흡을 반복하며 불편한 부분이 있는지 탐색합니다.

불편한 부분이 있다면 잠시 그곳에 머물러서 불편함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줍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갑니다."


요가를 하다 보면 안 되던 동작을 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 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나는 왜 저 동작이 안될까? 그렇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기다리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무리하면 어김없이 몸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 요가를 해본 사람은 안다. 무리하지 않아도, 욕심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안되던 동작도, 절대 안 될 것만 같은 동작도 신기하게 된다.


뭐 얼마나 대단하게 산다고 나를 더 괴롭히나.

지금까지도 충분히 열심히 살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나 자신을 조금 편안하게 해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좀 더 수련해야겠다. 어렵겠지만 더 갖고 싶은 욕심, 더 잘하려는 욕심의 맞은편에 있는 만족이라는 녀석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법을 배워야겠다. 그렇게 나의 컨디션과 나의 속도에 맞춰서 머물기도 하고, 조금 기다리기도 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그때 더 나아가도 괜찮으니까.


나마스떼.

(나마스떼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뜻은 '지금 이순간 당신을 봅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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