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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Mar 18. 2020

나는 어떤 사람일까?

: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다가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백수생활도 이번 주면 끝이난다.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기로 하고, 출근을 위한 마음가짐을 정비하고, 대청소를 하고, 코로나 때문에 미뤄뒀던 약속을 처리하고, 백수 일 때는 그럭저럭 가지고 있던 걸로 버티던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을 가졌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통해서 심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마스크 금액을 결제하고 나니 공적 마스크 구입이 절실해졌다. 그렇게 공적 마스크 구입을 위한 앱과 네이버의 마스크 현황을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지켜보던 일요일! 드디어 초록으로 바뀐 약국을 발견하고, 집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약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재고현황이 주황으로 바뀌었고, 약국 위치를 찾다가 길게 늘어선 줄이 맛집이 아닌 약국이라는 걸 알고서야 새삼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길게 늘어선 대열에 합류하자 앞에 서있던 학생들이 내 뒤로 1명까지만 가능하다는 말을 해 주었다.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걸린 거다. 입고된 지 30분 정도밖에 안됐는데 벌써 품절이라니! 놀라고 있는 것도 잠시 내 뒤로 줄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앞에 선 사람들이 품절이라고 말해주어도 줄은 계속 계속 늘어났고, 약사님이 나오셔서 한 번 더 가능 수량을 말씀해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자리를 뜨질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지에 손을 찔러 넣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버럭버럭-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제도 왔는데 못 받았고, 평일에는 바쁜데 그럼 나더러 마스크 하나로 일주일을 더 버티라는 거야?"

약사님은 마스크 입고 시간과 상황을 설명했지만 아저씨는 막무가내였고, 급기야 서로의 언성이 높아졌다.


마스크 5부제가 실행되고, 한 주 동안 엄청난 건수의 신고가 들어와 일부 약국에서 판매를 중지한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바로 눈앞에서 이 상황을 보니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도 벽에 바짝 붙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싸움이 길어지자 약사님은 자기 걸 줄테니까 가져가라며 아저씨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렇게 싸움은 종결되고, 수군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조금씩 흩어졌다.




어렵게 공수한 2장의 마스크를 손에 받아 들고 나오는데, 재난영화에서처럼 갑자기 누군가가 마스크를 뺏기 위해 달려들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한 바퀴 휘이~ 둘러보고, 손에 들고 있던 마스크를 주머니 깊숙이 욱여넣고,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첫 공적 마스크 구입 후기를 들은 친구는 말했다.

"그럼 결국 그 아저씨는 마스크를 받아간 거네? 그럼 안되지. 왜 착한 사람들이 늘 손해를 봐야 하는 거야?"


그러고보니 마스크 구입을 검색해보다가 친오빠가 약사라 마스크 좀 구입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데, 정작 친오빠도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자신에게 부탁하는 상황이라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길게 늘어선 줄, 길어지는 싸움에 약사님은 결국 자기 것을 내어주는 손해를 본 것이다.

 

통화를 한 친구에게도 천방지축 아들과 남편을 쏙 빼닮은 딸이 있다. 식구가 많다 보니 그만큼 필요한 수량도 많기에 비싼 가격에 마스크를 구입하고, 추가로 공적 마스크까지 받아도 이게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상황이니 점점 힘들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내 뒤 마지막 1명은 만삭의 임신부였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둘 중 1명만 구입하게 된 거다. 혼자도 이렇게 불안한데 뱃속에 아이까지 있으면 오죽할까?


남동생도 영업사원이라 평일에는 마스크 구입이 어렵고, 그렇다고 주말에도 여기저기 줄을 선다고 해도 복불복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신 구입해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비싼 마스크를 계속 사야 한다

그렇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상황인 거다. 제각각 사정이 없는 사람이 없다. 화내서, 싸워서 받을 수 있는 거라면 아마 모두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울 거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거다.




서로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며 물고 뜯는 아저씨와 약사님의 싸움은 마치 하이에나와 사자를 보는 것 같았다.

서로의 입장은 모두 이해가 간다. 힘들수록 화가 나는 것도 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화 내고, 싸워서 얻는 아저씨를 보면서 지금보다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정말 영화적이라 말할만한 상황이 왔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지 생각하니 공포심이 들만큼 무서웠다.


만약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왔을 때, 내가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었다면...

나는 내 뒤에 임산부에게, 어린아이에게 마스크를 양보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아마도 그때는 나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섭다. 이 상황에 계속되고, 단지 거리두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물고 뜯기만 하게 될까 봐.


그런데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걱정에 걱정만 하는 나와는 달리 뉴스에서 여러 프로그램에서 대구로 뛰어드는 자원봉사자들, 의료진들 등의 모습도 보인다.

겁이 많은 나는 백번을 생각해도 그럴 수 없을듯하여 그들의 희생과 용기가 정말 존경스럽다. 서로 물고 뜯기에만 급급한 동물의 왕국 같은 세상에서 대가 없는 봉사라니. 목숨을 담보로 하는 희생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 그 가족들의 마음을 천만분의 일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재난상황이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직은 아니지만, 어찌 될지 몰라 보이지 않는 불안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민낯을 보게 되는 기분이다.


약국 앞에 약사도 누군가의 아빠고, 아들이고, 가족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화내고 싸운 아저씨도 누군가의 아빠고, 아들이고, 가족이겠지.

내가 중요하고, 내 가족도 중요하다. 모두에게 그렇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는 아직 없지만,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물고 뜯고 싸우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나를 계속 계속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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