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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Apr 11. 2020

오늘 하루도.. 수... 고했어....

: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 기상.

번뜩 눈이 떠져 시계부터 봤다. 7시 16분. 아직 알람이 울리기 1시간 전이다. 다시 꼼지락꼼지락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는다. 막 눈을 감은 거 같은데 정신없는 알람 소리가 들린다. 분명 1시간을 더 잤는데 이상하게 몸이 훨씬 무거워진 느낌이다. 눈은 감고, 그대로 손만 뻗어 알람을 끈다. 나에겐 아직 2개의 알람이 더 남아있다. 그러나 순식간에 두 번째 알람이 지나가고,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세 번째 알람이 울린다. 더 미적거리면 안 된다고 말하는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기어코 10분을 더 미적거리다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미적거린 시간만큼 부산스럽게, 부지런히 움직여 집을 나온다.


# 출근.

강남에 있던 사무실 출근할 때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한참을 걸어가야 했기에 출근 시간만 기본 1시간 이상이었다. 출근하기까지의 과정도 힘들었지만 아무리 일찍 나와도 출근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출근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일찍 도착한다. 그렇다. 버스 4 정거장에 도보 4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가까운 사무실 위치를 한 번 더 생각한다.


# 아침에 커피가 주는 행복.

버스에서 내리면, 아니 내리기 전부터 오늘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를 설득한다.

월요일은 무조건, 화요일은 날씨가 흐려서, 수요일은 기분이 흐려서, 목요일은 일이 많으니까, 금요일은.....

그렇게 매일매일 온갖 이유를 찾아가며 커피를 마시기 위한 노력을 한다. 

사실 사무실 1층에는 직원이면 할인되는 커피숍이 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야호!'를 외쳤더랬다. 그런데 웬만하면 커피는 다 잘 마시는 나에게조차 맛이... 웬만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류장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좀 더 비싸지만 맛있는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 이 커피가 오늘 내가 출근을 한 이유라고, 내가 계속 출근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라고 스스로를 한번 더 납득시킨다. 아침에 마시는, 맛있는 커피만큼 기분 좋아지는 일은 없다.


# 눈 깜짝할 사이.

커피를 홀짝이며 차분히 오늘 할 일들을 정리하다 보면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하고, 오늘의 업무가 시작된다.

밤사이 벌어진 크고 작은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늘 할 일이 더 추가된다. 늘어난 일감들을 돌아보며 타닥타닥-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노라면... 옆자리에 상사는 무심히 툭- 새로운 일을 또 던져준다. 갑자기 툭- 던져진 일감을 보며 '이게 내 일인가?' 잠시 생각한다. 제 할 일을 내게 미루는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뒤로 미뤄놓고, 새로 던져 준 일을 우선 처리한다.

그냥 빨리해서 넘겨주고 '내 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일을 끝내도 '이게 내 일인가?' 싶은 일들이 또 생긴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으응? 벌써 저녁시간이라고?

아침에 정리해 놓은 오늘 할 일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저녁을 먹고, 더 일을 할지... 저녁을 안 먹고 빨리 끝낼지 고민하는데... 상사가 '밥은 먹야야 한다'며 기어코 나를 끌고 나간다. 결국 저녁까지 먹고 사무실에 다시 들어온다. 창밖은 벌써 컴컴하다.


# 퇴근 후 산책.

눈은 뻑뻑하고, 뒷목은 뻐근하다. 출근하기 전에는 코로나 때문에, 출근을 하고 나서는 정해지지 않은 퇴근시간 때문에 더 이상 요가를 못 다니게 됐다. 요가가 얼마든지 집에서 가능한 운동임을 알지만 하루 종일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던 터라 가방만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나는 비록 반지하지만 걸어서 10분이면 한강에 갈 수는 있는 합정에 살고 있다. 저녁 10시 이후에 한강은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좋다. 쌀쌀한 바람이 답답함을 조금 데려가는 것 같다.


# 취침.

1시간 정도를 걷고는 집에 들어온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후다닥 씻고 나오면 잔뜩 어질러진 방과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모여있는 먼지들이 안부를 전하지만 애써 모른척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피곤하지만 바로 잠들기는 아쉬워 핸드폰을 손에 쥐고, '오늘 하루 바깥세상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나!' 인터넷을 기웃거리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말한 슬기로운 드라마를 보고 싶지만 감기는 눈꺼풀을 막을 길이 없다. 출근하기 전에는 불면증 때문에 고민하던 내가 이제는 이불속으로 들어온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니... 역시 불면증은 일을 해야 낫는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닫는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나를 토닥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수... 고했어.....


# 번뜩 눈이 떠진다. 다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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