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화가 날 때마다 이 프로젝트가 마지막 기회라는... 다시 가족들을 서울로 데리고 올라오겠다는 그의 '절실함'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 그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중이다.
'그건 그냥 절실하지 않은 거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남동생이 버럭 화를 냈다.
"아무도 그 사람한테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경력만 쌓였던 것 같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배울 수 없었다고? 그건 배우려고 하지 않은 거지!"
"그래도 그는 자기가 지금 엄청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일이 쌓여 있는데 쇼핑을 한다며? 그냥 퇴근한다며!"
"스트레스가 쌓이니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른데 그 사람한테는 그거인 듯"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래서 맨날 미안하다고 말은 해"
"진짜 절실했으면 말로만 하지 않아."
"안 해봤던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그럴 수 있지"
"안 해봤던 거니까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그 사람은 거기 까진 거지."
"그래도 짠하니까....."
"사연 없는 사람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 없어. 그건 그냥 절실하지 않은 거야"
나보다 3살이나 어린 남동생은, 나보다 4살이나 많은 그에 대한 뼈 때리는 말들을 쏟아냈다. 어쩌다 보니 나도 이해하기 힘든 그의 변명을 하다 결국 그는 그냥 절실하지 않은 거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현장'보다는 사무실 위주의 일들을 많이 했고, 시간이 지나면... 경력이 쌓이면... 언젠가는 '현장'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많아서... 현장 경험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그녀가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린다'는 말처럼 끊임없이 두드린 결과 이번 생에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기회가 그녀에게도 왔다. 그렇게 그녀도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됐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현장'을 지켜본 만큼 '현장'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넌 못할 거야~'라고 했던 말들을 보기 좋게 비웃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현장'과 실제로 겪어보는 '현장'은 많이 달랐고, 그녀가 잘하려고 할수록 일은 어긋나기만 했다. 그렇게 매일 욕을 먹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던 나이 마흔이지만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을 펑펑 쏟는다고 한다.
"나는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는 그저 똥 멍청이일 뿐이더라!"
언제나 밝았던 그녀의 웃픈 고백에 '처음엔 모두 다 그럴 수밖에 없다며, 잘하고 있다고!' 어쭙잖은 응원의 말을 건네는 내게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 물어봐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핸드폰 가득 적힌 메모를 열어 그동안 쌓아두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절실하다.
'절실함'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거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좋아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오래 살기 위해- 우리는 절실해진다. 그러니까 절실함은 형태는 각각 다르지만 '절실함'은 결국 무언가를 이루게 하는 강력하는 동기 부여가 된다.
나 역시 되돌아보면 절실함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치열했던 시절이 있었다. 돈이 필요해서,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절실했고, 그 절실함 때문에 '집착'했다. 그렇게 집착하다 보니 그것 말고는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문득문득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는 후회들도 남아있다. 하지만 딱히 잘하는 것이 없던 나에게 '절실함'을 이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집착'이었다.
내 경우는 '집착'이지만, '절실함'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와 내가 생각하는 '절실함'과 그걸 이루기 위한 방법 역시 당연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진다. '그는 지금 정말 절실한 걸까?'
그 덕분에 오랜만에 '절실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절실함'이라는 단어는 20~30대에게나 어울리는 단어! 그러니 나에겐 이미 지나간 시절의 추억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