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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시탐탐 Jun 13. 2020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 남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전화가 울리는 줄 알았는데 안전문자다.

예전에는 집 근처에서, 사무실 근처에서,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혹시라도 확진자와 스쳐 지나지는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안전 문자도,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들도 꼼꼼히 챙겨봤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지이잉~ 지이잉~ 울려대는 문자를 봐도, 다시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확진자 수를 봐도 '그런가 보다' 힐끔 쳐다볼 뿐 별다른 감흥이 사려져 버렸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여느 때처럼 알람처럼 울리는 안전문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진동소리와 함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들으셨어요?"

"뭘요? 오늘 촬영 스탑 했어요!"

"엥? 갑자기? 왜요?"


전화를 끊고 보니, 안전문자인 줄 알았던 문자는 단톡방 문자였고, 스태프 중 한 명이 코로나 확진자, 접촉자와 동선이 겹친 사실이 확인되어 검사 진행 예정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밀접한 접촉자는 아니지만,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곳이 촬영 현장이다 보니 혹시 모를 안전을 위해 촬영을 모두 취소하고, 그 스태프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스태프 모두에게 자가격리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휘리릭~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저번 주에 누굴 만났더라?'

지난 몇 달 동안 나 역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이번 주에 작은 축하자리가 있어 '이제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확진자의 접촉자의 접촉자의 접촉자의 접촉자일 뿐이지만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싶은 마음보다는 불현듯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는 뼈아픈 경험이 생각났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19살의 나는 엄마 없는 삶을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그제야 깨달았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그러니까 남에게도 일어나는 일들은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제야 내 바로 앞에 떨어진 불똥이 보였다. 한동안 안일했던 마음이 다시, 바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유독 뜨거운 날씨, 에어컨도 없는 한증막 같은 집에서 탈출해 겨우 커피숍에 도착했지만 서둘러 가방을 챙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주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너희 촬영팀 스태프가 확진자로 밝혀진 것도 아니고-"

"야, 그 정도로는 괜찮아. 네가 직접 만난 것도 아니고... 그럼 확률이 낮지"


나 역시 확진자의 접촉자의 접촉자의 접촉자의 접촉자는 '100만 분의 1의 확률'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는 뼈로 전이되는 암이었다. 그러니까 그 어렵다는 '100만 분의 1의 확률'이었다.

그러니까 그 낮은 확률의 대상에서 나는 제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설마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그 '100만 분의 1의 확률'의 사람이 언제든 내가 될 수도 있다.




'언제든 재확산될 수 있다'


대구, 경북지역이 초토화되고, 마스크 대란을 겪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비해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던 것도 잠시 따뜻해진 날씨에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긴장의 끈을 놓은 것뿐인데 보란듯이 이태원 클럽 확진자들로 인해 사그라들던 확진자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2차 위험을 알리는 문자가 계속해서 울려대지만 어느새 우리는 이 불안감이 익숙해져 버렸다.


촬영 현장에서도 날이 따뜻, 아니 갑작스럽게 더워지면서 매일같이 불만이 폭주한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하나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계속한다.

"마스크 착용을 반드시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당연할 걸 부탁하고, 사정까지 한다.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서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든데, 밖에서 뛰어다니면서 마스크까지 쓰고 일하다 보면 급기야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한다.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불편한 게 아니라 많이 불편하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다. 그러니까 나만 불편한 게 아니다.


'잠깐이면 괜찮겠지?'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나는 건강하니까 괜찮겠지?'

'설마 나한테도 그런 일이 있겠어?


하지만 그 설마.. 하는 안일한 마음은 언제든지 사람을 잡을 수 있다. 

삶은 언제나 방심할 때 뒤통수를 후려친다. 그러니까 아직은 방심할 때가 아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확진자와 접촉하게 될 수도, 내가 확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설마하는 마음 때문에,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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