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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inseoul Feb 16. 2021

글 쓰는 재미

6년 동안 쓴 일기가 준 것

초등학교 입학 후 6학년까지 일기를 썼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00년부터 06년까지는 일기를 쓰는 게 '숙제'였다.

'마음의 숙제'라던가 '인생의 숙제'처럼 은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전 첫 번째 의미의 숙제였다.

매일매일 다를 게 없는 일상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도 안 거르고 어떻게 일기를 썼나 싶다.

평범한 초등학생의 일상에서, 무조건 특별한 일 하나는 끄집어냈다.

저녁을 먹고 일기 쓰는 시간이 생생하다.

어린 나는 일기를 '쓰는' 시간보다 책상 앞에서 '뭘 쓸까' 턱을 괴고 긴 고민을 했다.


주말에 놀러 갔던 일상,

친구와 학교에서 나눈 이야기,

동생을 돌본 일 등등 별 걸 다 일기로 썼다.


초반에는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는 게 꽤나 부끄러웠다.

그러다가 점점 머리가 커가며, 일기 쓰기라는 과제를 얼른 해치우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알았다.

읽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쓰고 싶은 것들을 마구 써 내려간 날이 많다.

그렇게 하고도 정말 쓸 게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동시(詩) 창작을 시작으로 그림일기,

새로 산 문제집 이야기,

동생의 성장 과정,

문방구에서 새로 산 아이템 등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일기를 썼다.

어떤 날은 김밥천국에 파는 스무 가지가 넘는 김밥 종류를 줄줄이 일기로 쓴 적도 있다.

이렇게 일기 쓰기는 초등학교 내내 계속됐다.


정규 교육과정에 '일기 쓰기'는 없다.

해서 학년이 변할 때마다 선생님이 매일매일 일기를 검사할 지가 가장 궁금했다.


매년 바뀌거나 출산, 육아 등의 문제로 선생님이 새로 올 때면 나는 그 선생님의 스타일에 적응했다.

파워포인트로 '알림장'을 만들어 교실 왼쪽 위에 달린 tv 화면으로 띄워주는 선생님,

아침 자습과 1교시 사이에 동화책을 읽어주던 선생님,

벌점을 '사탕 몇 봉지 사 오기', 칭찬도 '사탕 몇 봉지 지급'으로 정한 선생님,

(사탕으로 경쟁 심리를 부추기시던 선생님의 스타일은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내 재능을 발견해 주시고, 그쪽으로 많은 기회를 주시는 선생님 등 정말 다양했다.


선생님 따라 매년 집중하는 건 달랐지만, 왜 '일기 쓰기'는 끝나지 않았을까.


아침마다 일기를 제출하고, 집 돌아가기 전 일기를 돌려받는 건 내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어떤 해에 만난 선생님은 일기에 색연필로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맞춤법을 고쳐주기도 했다.

나는 늘 일기장을 받으면, 바로 전날에 쓴 일기를 펼쳐봤다.

그날 달린 코멘트를 보며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했다.

또 내 일상을 주제로 선생님과 소통하는 것 같아, 일기장을 받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졌다.

이렇게 내 일기 쓰기는 반강제적으로 계속됐다.

지극히 같은 일상에서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 일.


4학년 때인가, 선생님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기장을 일주일에 두 번만 내도 된다고 하셨다.

매일 쓰는 일기를 드디어 두 번만 써도 된다니!!!

당장 다음날부터 달라질 일상이 좋아 부모님께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빠는 일기 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교육에 있어서 강제하는 게 일절 없는 아빠였지만, 일기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매일 쓰라고 하셨다.

나와 언니는 초등학생 시절, 일기를 쓰고  아빠 방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일에 지친 아빠였지만, 저녁식사도 제치고 아빠는 늘 우리 일기를 확인해 주셨다.


4학년 선생님이 일기를 안 써도 된다고 했지만,

왜 맨날 나는 일기를 써야 하는지 참 불만이 많았다.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일기는 쓰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할 말이 많았지만, 아빠 말 따라 나는 6학년, 중학교 배치고사를 치르기 전까지 일기를 썼다.


그렇게 나는 꼬박 6년을 일기를 썼고, 22년이 흘러 28살이 되었다.

이제는 아빠가 왜 그렇게 일기 쓰기를 강조하셨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일기 쓰는 습관 덕분에 나는 지금 '나대로' 있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온전히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6년 동안 일기를 쓴 습관 덕분이다.

나는 중학생 때 공부를 시작해,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다.

입시로 스트레스 받고, 성적에 힘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지금은 대부분 비공개이지만,)내 다이어리, 친구들과 갔던 곳, 대입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참 상세하게도 블로그에 적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일상을 발견하려고 한 노력이 이 '기록'을 가능하게 했다.


익숙한 풍경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거다.

그렇게 내 주변의 것에 눈길을 주고, 한 번 더 마음을 써서 글로 남기는 일.

이 과정은 자신의 아픈 곳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탐구하게도 해준다.


일기를 썼던 습관 덕분에 나는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한다.

글이 나를 좀 더 튼튼한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내 우주를 확장해나가는 일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다.


앞으로도 나는 좋아하는 것들을 글로 써보려고 한다.

마음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때가 많다.

하여 작은 감정이더라도, 부끄럽지만 이렇게 거창한 글로 쓴다.

초등학생 시절 별로라고 생각했던 일기가 나를 위로하다니.

정말 부모님 말씀은 잘못된 게 없나보다.

이런 사소한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이 힘든 날, 내 감정을 위로할 수 있길 바라며.  


- 봄을 기다리다가 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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