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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Jan 25. 2021

너와 나의 마찰음

길을 걷다 얼음 바닥을 밟았습니다. 마찰이 없는 얼음 위에서 잠시나마 미끄럼을 즐겼습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플 때 바닥이 빙판이 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걸어나가려고 발을 떼면 마찰력은 반대로 뒤에서 우리를 붙잡습니다. 바닥이 당겨 붙는 힘을 이겨내기 위해선 더 큰 힘을 내야 합니다. 마찰은 나아감을 방해하는 존재였습니다.


항상 마찰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지내왔습니다. 다툼이 싫었고 싸움이 두려웠습니다. 바닥에서 우릴 나아가기 힘들게 붙드는 마찰력처럼 사람 간의 마찰 또한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했던 방법은 회피와 도망이었습니다. 균열이 보이면 한 걸음 물러섰고 마찰음이 들리면 뒷걸음질 치곤했습니다. 그것이 평화라 여겼습니다.


얼음 바닥 위에선 미끄러지는 동안 걷지 않아도 되기에 잠시 동안은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찰력이 없는 얼음 바닥에서는 멈추기도 어렵고 다시 나아가기도 어렵습니다. 마찰은 방해하는 존재처럼 보였지만 나아감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마찰력이 없었더라면 걸을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갈등의 끝이 언제나 웃을 수 있는 결말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없듯이, 마찰 없는 세상 또한 없었습니다. 파도가 있기에 바다는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입니다. 사람과의 마찰이 전혀 없다면 조용하게 살아갈 순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조용함은 전쟁 후의 고독함같이 죽은 평화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마찰이 있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마찰이 있기에 당신과 함께 살아 감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날 당신과 부딪히며 내었던 그 마찰 소리가 이젠 싫지 않습니다. 더 이상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다시 한번 부딪혀 봅니다. 그 마찰음이 우리를 이어주는 소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찰음을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그 소리는 우리만의 화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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