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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20. 2022

당장은 변하는 게 없다지만

과학과 에세이

다녀간 자리를 어지러이 둔 채 떠나는 사람. 길바닥에 쓰레기를 휙 던지며 지나는 사람. 공유 자전거를 아무 데나 세워두고 제 볼일 보러 가는 사람, 혹은 숨겨두기까지 하는 사람. 공공의 장소를 사석화하는 사람. 별일 아닌 듯이 정해진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람. 사사롭고 삿된 일들을 사소하게 여겨 무심코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에서 선뜻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 멀더라도 횡단 구역까지 걸어가 신호를 지키는 사람. 번거롭더라도 종이와 플라스틱, 알루미늄이 얽혀있는 포장 팩을 낱낱이 떼어내서 배출하는 사람. 귀찮더라도 성분을 확인하며 식단에서 작별한 육류를 꼼꼼히 걸러내는 사람. 굳이 종교의 영향 아래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선택하기로 한 일들을 선뜻 지켜내는 사람. 사소하지만 작은 신념을 지켜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휴지 한 장 덜 쓴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그런 행동 하나로 나무가 보호되고 지구가 살아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최소한만 떼어내려, 내게 필요했던 보통의 양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며 이기심이 피어난다. 어차피 나 하나쯤이라는 마음이 꿈틀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겨둔 온기를 이어받았던 날을 떠올리며, 자신의 온기를 떼어내어 남겨두는 사람들이 확연히 있다.


당장은 변하는 게 없다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의 도덕을 지켜내는 사람이 있다. 당장은 바뀌는 게 없다지만, 대단찮은 행동들이 그런 식으로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반복되어 발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작은 행동이 선뜻 세상을 조용히 바꾸고 있다. 부분이 집단이 되고, 집단이 전체로 반복되는 프랙털 모양처럼. 티는 안 나더라도 서서히, 은은하게. 어딘 가에서 이따금 그들이 남기고 간 훈기를 또렷이 기억하니까.


작디작은 현상이 모여 큰 사회가 되고, 거대한 사회에서 하나의 세상이 된다. 각자의 체온이, 제각각이던 온유함이 모여 낼 커다란 시너지를 안다. 혼자서 행하던 작은 실천들이 어느새 기여할 커다란 무늬를 머릿속에 그려낸다. 프랙털스럽게 세상의 패턴을 바꿀 작은 신념들의 힘을 믿으니까, 내가 믿는 소량의 실천들을 또 하나 해낸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녀간 자리에 또 한 번의 작은 온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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