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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26. 2022

잘 살아내겠단 주장

과학과 에세이

잘 살아내고 있다 주장하며 견뎌 보자. 하루하루가 시험대에 놓인 듯한 기분이다. 답답하고 갑갑한 것도 맞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인데, 때로는 모호함 때문에 괜스레 한 구석이 새큰해진다. 그럴 때마다 속에선 응달이 지고, 그걸 또 억지로 막아낼 수도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럼에도 살아가니까, 그럴수록 강하게 주장해 본다. 내 모습이 잘 사는 거라고. 조금 더 지나 언젠간 알게 될 거라고 틈틈이 되뇌인다.


일생은 증명해가는 과정이다. 일거수일투족 잘 살아냈다는 증거를 한 겹씩 쌓아가야 하는 일련의 단계. 그리고 모두의 고민은 결국 한 점에 모인다. 지금 과연 잘 살아내고 있는 걸까란 의문으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죽을 때가 다 되어, 혹은 죽고 나서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고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부재할 수 있고. 미래로 넘어가 보고 올 수가 없으니, 그런 모호한 현실 앞에 놓인 우리에게 당장 해야 할 일은 하나씩 차근히 이뤄나가야 하는 것뿐이다. 돌아보면 변곡점이 찍힌 날들이 분명히 있었다. 잘 살아왔음을 증명시켜줄 그런 날들이 곳곳에 있었다.


모든 이론과 가설은 하나같이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증거와 입증, 증명을 긴 기간에 걸쳐 해나간다. 어쩔 땐 몇 세대를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새 닿게 된다. 주장이 맞았다는 사실을.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맞다는 이론도, 우주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느 순간의 폭발로 탄생했다는 주장도, 모두 처음엔 무시받던 지류였다. 지득한 시간이 흐르고 증거가 쌓이고 나서야 증명됐다. 이제는 본류가 되어 세상을 이끄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도 말이다.


열등감은 없어도 불안감은 언제나 함께였다. 재능을 한 아름 안고 태어난 주변 사람들, 유수한 능력자들, 명문대 졸업생과 석박사 학위자 같이 뛰어난 자들에서 이미 성취를 한껏 이룬 사람들까지. 줄곧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고 곁에서 어른거렸다. 그런 현실 앞에선 한껏 자신 있게 펴보았던 어깨가 살며시 움츠러들기도 했다. 내 보잘것없는 인생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겁도 났다. 조바심도 들었고. 그러니 잊지 않고 속으론 더욱 주장했다. 나도 잘 살고 있고, 내가 더 잘 살아 낼 수 있다면서.


점이 모여 선이 된다. 선은 여러 겹 쌓여 면을 이루고, 켜켜이 쌓인 면은 도형을 형성한다. 지금의 당연함이 곧 과거의 당연함을 뜻하진 않는다. 그 주장과 가설을 증명해 내는 끝없는 과정이 쌓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니 지금 내 삶을 깎아내리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속으로 조용히 말해 주어도 될 일이다. 지금도 끝없이 찍히는 점들이 점철되어 선이 그어질 거라고, 그 선이 면을 만들어 뚜렷한 도형을 빚어낼 거라는 말을.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면 더욱더.


세상의 반례가 되자. 반례는 정립된 논리를 깨버린다. 정해진 순리를 파헤친다. 응당 맞다고 여겨버리는 명제를 반박한다. 그리고 또 다른 법칙이 새롭게 탄생한다. 늘 그렇듯, 돌고 도는 관계다. 그렇게 입증될 날을 기다리며 주장을 되뇌자. 하나의 점이라도 소박하지만 확연하게 증명해내며 살아가자. 언제가 되더라도, 그날은 꼭 올 거라고 믿음을 놓지 않는 이유다. 하나의 반례가 되어 세상에 제시될 날이 올 테니, 때로는 그 사실을 잊고 힘듦에 버거울지라도 현생을 잘 살아내겠다고 계속 인지시킨다. 종교가 없어도 운명을 믿는다. 자명하단 모든 법칙도 결국엔 누군가의 반복이 쌓여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결국은 이기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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