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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Oct 30. 2022

잘먹고, 잘살기

과학과 에세이

고급 아파트, 비싼 자동차, 명품 브랜드. 비싼 것들이면서 잘사는 사람의 것들이다. 부유하다는 사실이 언제부터 잘사는 걸로 정해진지는 모르겠으나, 물적으로 여유 있는 모습이 잘산다고 표현되는 세태는 늘 그랬다.


말마따나 부자만 잘살 수 있는 걸까. 그들도 잘살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부자도 못살 수 있고, 돈이 넉넉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을 텐데. 그런 모습도 분명 봐왔는데. 모든 명제에는 역이 있다. 관용처럼 부르는 잘산다의 의미가 부자만 해당되는 건, 돌아보면 어색한 부분이 참 많기도 했다. 그게 맞는다면 부자만 잘살아야 하는 거였으니까.


가치에는 형태가 없다. 사랑, 행복, 자존감, 이것들을 삼각형이나 사각형이라 하지는 않는다. 휴대폰이나 가방과는 달리, 가치는 누구도 형용할 수 없다. 그 덕에 누굴 만나든, 같은 주제를 얘기해도 그 끝은 항상 다른 결론으로 맺어지곤 했다. 형태가 없으니 각자의 상상 속에 어렴풋한 모습으로 자신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너무나 다른 서로의 가치에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나도 잘맞음에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잘맞음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는 언제나 달랐다.


비현실적으로 똑 닮은 일란성쌍둥이에게 같은 옷까지 입혀놓으면 그 둘은 같은 존재일까. 아무리 비슷하게 맞추어도 둘의 이름까지 같아질 순 없다. DNA 일치율이 99.9%를 넘어 무한소수 가까이 수렴하더라도 결코 같은 사람이 되진 않는다. 쌍둥이처럼 그렇게 서로가 극도로 낮은 가능성으로 닮는다 한들 결국엔 다른 존재다. 반면 얼핏 봐도 대놓고 다른 우리가, 대부분의 가치를 그저 같은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적은 너무나도 많았다.


잘사는 방법을 모르겠다. 아직 모르는 건지, 나이가 들 만큼 더 들어도 원래 모를 수밖에 없는 건지조차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는 것도 분명 있다. 각자의 잘삶은 다를 수밖에 없겠다고. 비슷할지언정 동등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이젠 부자를 봐도 부유한다고 하지 잘산다고는 하지 않는다. 잘살아 왔는지, 잘살아 오지 못했는지는 두고 봐야 아는 일일 뿐이니. 돈이 많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잘사는 건지는 알 수 없으니까. 사실 우린, 내가 더 잘사는 와중에도 괜히 스스로를 치부할 때가 있었을 거다. 세상의 잘사는 기준이 하나만 있는 줄로 듣고 말하며 쓰고 읽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 밤이라고 지구 모든 곳이 어둡진 않다.


형태도 없는 가치에 억지로 끼워 넣었던 틀을 조심스레 빼낸다. 녹슨 철문처럼 삐걱거리며 아직은 잘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도 밥을 한 끼 정성스레 차려 잘먹었다. 오로지 나만 차릴 수 있는 내 식탁. 화려하게 내비칠 것도 없고 결코 부자도 아니지만, 내 기준대로 잘먹고 잘사는 방법은 어디든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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