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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10. 2024

깨달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어리석음

가끔 철이 든 해탈한 수행자처럼 어디서 들은이야기가 되었든 직접 느꼈던 것들을 읊어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세상 두려운 것이 없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이만큼 든든하고 마음이 그득 차오르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왜 그 시간이 오래가지 않을까 늘 의문이 든다. 그래서 자괴감이 더욱 크게 든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거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니 고개 돌려 문밖을 나서는 순간 잃어버리고 무명에 가득 쌓인 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나를 즉시에 알아차려 발견했다면 깨달은 대로 실천하기 위해 다시금 정신 차려 돌아올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을 바로 해낼 만큼 순간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아주 자연스럽지만 빛의 속도로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깨달음들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가슴속에 아주 깊이 각인이 되어야 한다. 그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깨달음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깨달음이 아니라 길고 긴 어리 석음 속에 누군가가 내게 가르침을 주듯 한 번씩 번뜩이는 해법을 주신 것인데 삶 속에, 순간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니 그 깨달음이 내 머리를 스쳐만 지나간다. 꼭 필름 속 지나가는 파노라마처럼 말이다. 다시 돌이키려니 기억이 점점 희미해진다.


아침에는 희망 가득한 깨달음으로 행복하게 출근했는데 집에 돌아오면 영락없는 어리석음에서 헤매는 사람이 된다. 누군가는 이중인격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다. 왜 깨닫고 느끼고 습득한 것을 이어나가지 못할까? 이어 나가기 위해 순간에 집중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택한 방법은 여전히 달리기, 그리고 기도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현실의 삶은 삶이기에 기도만 하면서 달리기만 하면서 하루의 삶을 다 할애할 순 없다. 다만, 기도라던지 달리기와 같이 계속해서 심신을 단련해 내가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변해가는 모습을 삶에서 발견하면 된다. 발견하는 힘조차 순간에 집중하고 내 삶 속 찰나에도 집중을 잃지 않으려 하는 노력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답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 또 나 스스로 불교에 귀의하며 절에 다녔던 인연으로 뜻은 몰라도 귀동냥으로 듣고 스님께 법문으로 직접 듣고 삶이 힘들 때 법문으로 청해 들었던 말들이다. 하지만 소귀에 경읽기처럼 좋은 말인 줄 알고 들으면 한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들이었지만 그저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 마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현실과는 잠시 동떨어져 무조건 고요해져야만 하고 그럴만한 여건이 갖춰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왔던 한 비구니스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하다못해 똥을 누는 시간에도 나는 매 순간에 집중해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하루동안 무얼 말하는지 무얼 생각하는지 무얼 행동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며 의미 없는 시간만 반복할 뿐."이라고.


나는 단연코 삶에서의 조화를 놓치고 싶지 않다. 불교가 편안하고 익숙하고 좋지만, 그렇다고 내가 출가해서 스님이 될 것도 아니고, 종교인으로서의 길을 걸을 일은 만무하다. 그렇다면 삶에서 맡고 있는 역할인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직원으로서 조화롭게 충실하게 살되 마음을 지켜가고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최대한 긍정적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내가 그렇게 노력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달리기와 기도하는 일이다. 가끔 경전을 읽다 보면 경전문구들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가 있고, 어떤 날은 두 달째 매일 읽고 있는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싶을 정도로 생경한 구절이 있다. 경전을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집중해내지는 못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계속된 연습을 통해 삶에서 하나씩 하나씩 해내지 못했던 것들을 이뤄내고, 알면서도 습관 때문에 고치지 못했던 부분들을 마침내 고쳐내는 일들을 경험해 나가고 싶다.


사실 오늘 가족들과 휴가지에 놀러 왔다. 밤이 되어 아이들은 자유시간을 주고 나는 잠시 시간이 나 이렇게 글을 적는다.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다. 어제 일의 끈을 지금까지 끄달려온 집착일 수 있겠으나, 어제의 나는  여전히 사회인으로 관계에서 지지 않으려는 나, 또  생각 많은 과민한 사람으로서의 내가 발동하며 많은 말들, 생각들을 뱉어냈다. 후회도 들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었다. 완벽하는 나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걸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곱씹어보며 얻은 결론을 이곳에 기록해 두는 것일 뿐이다. 결국 어제의 일,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이 모든 잡념의 원인 역시 어제 하루의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 순간에도 그간 경전을 읽고 달리기를 하며 얻은  긍정적인 생각, 깨달음들을 손쉽게 날려 보낸 이유일 것이다.


내 몸 구석구석에 인이 박힐 정도로 곱씹고 되내이며 연습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올바르게 듣고 집중하고 옳은 바라봄이 있는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머릿속 많은 고민들이 사라지고 진짜 살아있음이 된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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