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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15. 2024

루틴이 깨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최근 여름휴가를 4박 5일 다녀왔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다 보니 늘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들에게 직접 여행 짐을 싸보도록 했고 남편과 나는 늘 그렇듯 '최소화한 짐,일정'을 목표로 준비했다. 이를테면 바다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하고 언제 이동하고 식사는 몇시에 어느식당 등 세부일정 대신 오전시간은 바다에서 재미있게 놀기 , 아이들이 지루해한다면 그 안에서 걷거나 쉬거나 모래놀이를 하거나 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식사도 실제 배가고파 무언가를 먹고싶은 시기에 먹는것으로 계획했다. 막상 하루 삼시세끼 다먹는 일상은 늘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그닥 배가 고프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거먹어라 저거먹어라 다먹어라 편식하지 마라 하는것보다 스스로 배고픔을 느끼는 시기에 먹도록 하면 보통 그 횟수가 하루 두끼, 중간에 요기할 수 있는 간단한 간식정도면 된다.  이런 여행일정에 대한 판단은 그 상황, 그 여건, 그 시간에 맞는 결정을 그때그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그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특히 기존 여행으로 자주 선택했던 일정인 2박 3일과는 또 다른 맛의 4박 5일은 무언가를 서둘지 않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급박하게 지내지 않아도 되기에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사실 첫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서도 부모보다 아이 여름방학이 제일 바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분주하게 보냈다. 학습이나 국영수 중심의 공부를 위한 학원은 전혀 보내지 않고 있지만 최근 TV에서 마술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마술에 흥미를 가진 딸아이를 위해 마침 구청에서 진행하는 무료 어린이 마술 수업을 신청하고, 구내 청소년센터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후환경에 관한 학습 및 리사이클링 만들기 프로그램도 신청하고, 기존 학교에서 해왔던 방과 후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국기원 심사를 위한 태권도 연습에 매진하다 보면 특히 금요일은 아이의 스케줄이 하루 4개가 된다.


그렇기에 이번 휴가는 숨가쁜 일정에서 벗어나 온전히 쉬고 놀며 평소보다 가족들끼리 대화를 더 많이 하며, '무언가를 제 시간 내에'해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나 또한  7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한 나의 기도하는 습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새벽 일찍 또는 밤늦은 시간이 아니고선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간혹 출, 퇴근시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하는 등 최대한 부지런히 실천해 왔지만 아직 매 순간마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들이 능수능란하지 않아 늘 노력이 필요한 나로서는 틈새시간을 이용해 기도, 수행을 실천하는 일은 숙제를 하기 위해 바쁘게 해내는 느낌과 다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이번 여유시간 4박 5일 동안 경전도 천천히 읽으며 온전히 문구 하나하나의 뜻이 집중하기에 더없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경전을 손에 놓지 않았고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쉬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중간중간 바라보며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경전을 읽고자 했다.


최근 내 삶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 있다면 경전을 읽으며 마음의 힘을 얻고, 달리기 운동을 통해 신체의 힘을 얻는 일이었다. 이것을 나만의 루틴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했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약 두 달 정도 꾸준히 실행해 오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워가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가 내게 눈에 보이는 대단한 결과를 떡하니 가져다준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결정해서 스스로 실천하고 꾸준함이 더해지면 나 스스로를 더 믿게 되고 자신감이 생기며 어느 날엔가는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에 불쾌한 일이 생기거나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괜찮아, 견디자. 집에 가서 내 몸과 마음을 다듬어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으니 조금 더 견뎌보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경험을 했었기에 내게 더없이 큰 힘이 되는 일들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직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말했다.

"여행까지 와서 경전만 보고 있지 말고 창밖에 해 뜨고 지는 것도 보고 편안히 있어. 아이들하고 놀러 온 건데 계속 경전만 읽고 있으면 어떡해?"


 순간 남편의 말에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남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어떤 순간에도 달리기를 해야만 하고 경전책을 읽어야만 하는 강박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 아니었지?
 아이들, 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온 일정이라면 그 일정에 온전히 몰입해서 시간을 보내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 기도하고 체력도 다지고있는것인데..
 내가 주객을 전도하고 있었네..'



4박 5일 중 2일간 경전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남은 일정의 기도방법을 바꿨다. 비록 두 달 넘게 이어온 빠짐없이 하루하루 기도로 채워가던 나의 루틴은 깨졌지만, 그 시간 경전책을 읽느라 보지 못했을 아이의 수영 공포증을 벗어나는 과정, 잠수까지 해내며 "엄마, 나 용감해졌지?"라고 말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또, 여느때 같으면 경전책을 읽느라 보지 못했을 시간에 아이들에게 주시하며 집중한 덕분에 남매간의 다툼에서 둘째 아이의 심리상태를 파악해  따로 방 안으로 데려가 훈육하며 진심으로 누나에게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 아들은 내게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엄마, 나 사실 그때 누나랑 싸우고 더 먼저 사과하고 싶었는데 부끄러워서 늦게 사과했어. 사실은 먼저 사과하고 싶었어."라고 말이다. 화내지 않고도 아이에게 부모로서 알려주고 싶은 바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었고 그 말을 듣고 이틀을 더 생각하고 고민한 7세 아들의 속마음도 들을 수 있었다.


경전책을 읽으며 기도하는 행위가 나 스스로는 나를 위하고 가족을 위한 일이기에 좋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아이입장에서는 엄마가 마음의 수양을 위해 경전책을 읽는 것인지, 자기는 빼놓고 엄마 혼자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인지  알리 없다. 그저 지금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인데 그저 글씨가 많은 작은 책에파묻혀 읽고 있는 엄마의 모습만을 기억할 뿐이다. 결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리 없다.


그렇게 어떻게든 지켜왔던 나만의 루틴은 3일간 깨졌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보다 든든해졌고 의미 있는 기억과 장면들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그간의 실천력이 뒷받침 된다면 어쩌다 한번 그 루틴이 깨졌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질 일은 없으며, 오히려 루틴을 지키기 위한 그간의 나의 노력의 결과를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강박보다 이 계획을 왜 세웠는지, 이것을 통해 나는 무엇을 깨닫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그것을 얻음으로써 루틴이 깨져도 괜찮아할 수 있는 마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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