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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물안궁의 삶 Aug 01. 2024

행복만을 좇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후회하는 중입니다.

나는 그다지 멋 부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큰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사치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꾀나 소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론 모든 것이 당연했고 평준화 되었기에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은 그마저도 대단한 행복이자 행운일 텐데.


예를 들면 우리가 매 끼니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편하게 잠을 잘 집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겨울엔 보일러를 틀고 잘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연한 건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나는 큰 욕심 없소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는 나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내가 이만큼 견뎠으니, 그 정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어린 시절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왜 너는 나한테 그것도 못해줘?"라는 마음같달까?


성인이 되었기 더 이상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내면의 소리는 곧 표정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작년 9년간의 긴 직장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사했다. 그렇게 2개월 하고도 보름이 흐른 뒤 현재의 한 회사에 입사했다. 모든 것이 나아졌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듯 했지만, 어딜 가든 누구와 있든 모든 상황이 완벽할 순 없기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잘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그래! 전회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들로 덮어버리곤 했지만, 6개월쯤 지나자 마음과 머릿속에 생긴 경험과 선입견들, 불교에서 말하는 마장이 마구 뿜어져나왔고 그것을  뿌리치기란 참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을 맞으면 방어기제들이 어김없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9년간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마음이 스크래치가 났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의 생채기만 생긴게 나았을지 모른다.


어느덧 협업하던 업무에서 구멍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누구 책임인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려야만 했다. 사실 그 누구도 책임여부를 따지려고 들지 않았지만 이 역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서로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가 마음으로 치열한 수싸움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있는 조직에서 엉망일지언정 철저한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스타트 업 회사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5인미만 초소규모 회사도 아닌 정체불명의 회사가 차츰 몸집을 불려가는 시기였기에 하나하나 시스템을 잡아가야 한다는 명분하에 그때그때 입맛에 맞게 (주관적 생각) 바뀌어가는 정서,문화에 적응하기란 너무도 힘이 든 일이였다. 그 안에서도 실세로 불리는 우두머리는 따로 있었고 그 사람에게 밉보이면 회사생활은 힘들어지는.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밖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온 사람이라면 그런 것쯤이야 감지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해주고 있는데 우리는 '사람'이 우선인데 라는 말이 거의 캐이프레이즈나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직원들도 싫은 소리는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실무자이자 관리자들은 늘 바빴고 당연한 보고절차조차도 눈치를 보며 진행해야 했다. 왜냐면 그들이 바쁘기 때문에. 그런 미세스트레스는 곧 머지않아 커다란 혹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이유거리가 될 만큼 파격적이지는 않기에 면담을 하거나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상대에게 가서 닿지 않는다. 그냥 그랬구나 뭘 그런 거 가지고 라는 정도의 반응만 이끌어낼 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대놓고 나쁜 사람은 차라리 상대하기 쉽다고. 여기는 회사고 일로모인사람들인데, 업무와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하다가 곧 화가 나고 번아웃까지 느끼게 되는 직원들인데 결국 죄짓는 심경을 느끼는 건 결국 또 직원이다. 그러면서 퉁치고야 마는 한마디.


"밖에서 만났으면 잘 지냈을 텐데.. 그래도 사람은 착하잖아.. (자매품 사람은 괜찮잖아..)


사실은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회사에서 만난 관계란 그저 일로 만나 일로 틀어지고 일로 회복하는 그런 사이다. 철저히 업무로 맺어진. 그 안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여러 베푼 것들만 기억하는 관리자 밑에서 내게 남는 건 결국 죄책감이다. 그런 관리자를 씹어댔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뱉은 말에 대해 회복할 수 있는 말은 결국 '그래.. 사람은 좋잖아..' 이것 뿐 더 있겠는가? 회사에서 일로 힘들게 하고 일로 소통이 안되면 그 사람은 조금 심하게 말해 그게 나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 나쁜 게 아니라, 대부분 직원이 동일하게 말하고 부르짖고 있는 본질을 망각하고 해 준 것만 기억하는, 그러나 사람은 못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 회사에선 나쁜 거다.


 


장황하게 펼쳐진 말속에, 그렇다. 나는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 그런다. 퇴사 후 고르고 골라서 간 게 또 그런 곳이냐고. 이쯤 되면 내가 나를 탓할만하다. 나는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사람인가. 회사에서 아까말한 나쁜 사람은 결국 나인가 싶다.


 오늘은 연차휴가다. 여전히 팀장에게 여러 업무 피드백 카톡이 온다. 장황하게 톡 쏘는 말을 붙이고, 보고는 내일 받겠단다. 내가 연차휴가인걸 알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또 한번 후회하고 있다.


 관계에서 오는 것뿐 아니라, 이곳에 적을 수 없지만,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회사의 운명까지도 나는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다. 말 한마디에 여전히 일희일비하는 나는 8월의 첫날이라도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마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제 더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그리고 어느덧 떠올린다. 직장에서의 행복을 바란다는건 내 소유 회사를 갖고있는 사장에게도 갖기 힘든 감정, 마음일거란 것을.


행복과 희열이 고통을 눌러 이겨버릴만큼의 열정이 아니고서는 그저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에서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사실 욕심중에 가장큰 욕심이며, 마음으로 부릴 수 있는 최대 사치일지 모른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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