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을 좇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후회하는 중입니다.
나는 그다지 멋 부리는 것에도 관심이 없고 큰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며 사치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꾀나 소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모든 것이 당연했고 평준화 되었기에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 부분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은 그마저도 대단한 행복이자 행운일 텐데.
예를 들면 우리가 매 끼니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편하게 잠을 잘 집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겨울엔 보일러를 틀고 잘 수 있는 것들 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당연한 건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도 나는 큰 욕심 없이 소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는 꽤나 욕심을 내고 있었다.
내가 이만큼 견뎠으니, 그 정도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어린 시절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왜 너는 나한테 그것도 못해줘?"라는 마음같달까?
성인이 되었기에 더 이상 겉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내면의 소리는 곧 표정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작년 9년간의 긴 직장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사했었다. 그렇게 2개월 하고도 보름이 흐른 뒤 현재의 한 회사에 입사했다. 모든 것이 나아졌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듯 했지만, 어딜 가든 누구와 있든 모든 상황이 완벽할 순 없기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고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잘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그래! 전회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들로 덮어버리곤 했지만, 6개월쯤 지나자 마음과 머릿속에 생긴 경험과 선입견들, 불교에서 말하는 마장이 마구 뿜어져나왔고 그것을 뿌리치기란 참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을 맞으면 방어기제들이 어김없이 작동하기 시작했고, 9년간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마음이 스크래치가 났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의 생채기만 생긴게 나았을지 모른다.
어느덧 협업하던 업무에서 구멍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누구 책임인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려야만 했다. 사실 그 누구도 책임여부를 따지려고 들지 않았지만 이 역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서로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가 마음으로 치열한 수싸움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있는 조직에서 엉망일지언정 철저한 시스템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스타트 업 회사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5인미만 초소규모 회사도 아닌 정체불명의 회사가 차츰 몸집을 불려가는 시기였기에 하나하나 시스템을 잡아가야 한다는 명분하에 그때그때 입맛에 맞게 (주관적 생각) 바뀌어가는 정서,문화에 적응하기란 너무도 힘이 든 일이였다. 그 안에서도 실세로 불리는 우두머리는 따로 있었고 그 사람에게 밉보이면 회사생활은 힘들어지는.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밖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온 사람이라면 그런 것쯤이야 감지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해주고 있는데 우리는 '사람'이 우선인데 라는 말이 거의 캐이프레이즈나 다름없었고 그렇기에 직원들도 싫은 소리는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실무자이자 관리자들은 늘 바빴고 당연한 보고절차조차도 눈치를 보며 진행해야 했다. 왜냐면 그들이 바쁘기 때문에. 그런 미세스트레스는 곧 머지않아 커다란 혹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이유거리가 될 만큼 파격적이지는 않기에 면담을 하거나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상대에게 가서 닿지 않는다. 그냥 그랬구나 뭘 그런 거 가지고 라는 정도의 반응만 이끌어낼 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대놓고 나쁜 사람은 차라리 상대하기 쉽다고. 여기는 회사고 일로모인사람들인데, 업무와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평가를 하다가 곧 화가 나고 번아웃까지 느끼게 되는 직원들인데 결국 죄짓는 심경을 느끼는 건 결국 또 직원이다. 그러면서 퉁치고야 마는 한마디.
"밖에서 만났으면 잘 지냈을 텐데.. 그래도 사람은 착하잖아.. (자매품 사람은 괜찮잖아..)
사실은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러 온 것이 아닌 이상 회사에서 만난 관계란 그저 일로 만나 일로 틀어지고 일로 회복하는 그런 사이다. 철저히 업무로 맺어진. 그 안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여러 베푼 것들만 기억하는 관리자 밑에서 내게 남는 건 결국 죄책감이다. 그런 관리자를 씹어댔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뱉은 말에 대해 회복할 수 있는 말은 결국 '그래.. 사람은 좋잖아..' 이것 뿐 더 있겠는가? 회사에서 일로 힘들게 하고 일로 소통이 안되면 그 사람은 조금 심하게 말해 그게 나쁜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 나쁜 게 아니라, 대부분 직원이 동일하게 말하고 부르짖고 있는 본질을 망각하고 해 준 것만 기억하는, 그러나 사람은 못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 회사에선 나쁜 거다.
장황하게 펼쳐진 말속에, 그렇다. 나는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 그런다. 퇴사 후 고르고 골라서 간 게 또 그런 곳이냐고. 이쯤 되면 내가 나를 탓할만하다. 나는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사람인가. 회사에서 아까말한 나쁜 사람은 결국 나인가 싶다.
오늘은 연차휴가다. 여전히 팀장에게 여러 업무 피드백 카톡이 온다. 장황하게 톡 쏘는 말을 붙이고, 보고는 내일 받겠단다. 내가 연차휴가인걸 알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또 한번 후회하고 있다.
관계에서 오는 것뿐 아니라, 이곳에 적을 수 없지만,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회사의 운명까지도 나는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다. 말 한마디에 여전히 일희일비하는 나는 8월의 첫날이라도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마저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제 더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그리고 어느덧 떠올린다. 직장에서의 행복을 바란다는건 내 소유 회사를 갖고있는 사장에게도 갖기 힘든 감정, 마음일거란 것을.
행복과 희열이 고통을 눌러 이겨버릴만큼의 열정이 아니고서는 그저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에서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사실 욕심중에 가장큰 욕심이며, 마음으로 부릴 수 있는 최대 사치일지 모른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