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온전히 놓아주는 일
시절인연이 그러했음을
20대 후반쯤 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 무성의하진 않았는지, 한 곳으로 치우치진 않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드는 날이 있었다.
매일의 하루도 썩 편하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내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구나.'
그런 마음이 들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전 생애를 다 돌아볼 순 없어도 최근 5년 이내에라도 스스로 가장 후회하는 일, 다시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먼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원인을 돌이켜 보기도 했다. 단순하지만 그 반대로 살고 언행하면 바른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원인에 포커스를 맞춰 조금 더 엄한 기준으로 나 스스로를 관리했다.
생각하는 방법, 말하는 어투를 좀 더 긍정적으로 가질 수 있게 관리했고, 늘 정해진 시간에 짧게나마 기도를 하거나 명상이라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업무를 하던 공부를 하던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어떤 분야보다 최선을 다했다. 나름대로는 고민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 자신을 돌이켜봄으로써 얻은 생각이었기에 동기부여도 훨씬 쉬웠고, 이제 사회에서의 제 몫을 할 수 있는 나이, 여건, 생각을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만큼은 정말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엔 잘했다기보다는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도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 눈빛, 평판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만족하는 부분이 굉장히 컸음에도 처음 온전히 받아보는 외부에의 칭찬이나 긍정적 평판에 많이 매몰되었다. 특히 그것을 계속해서 지켜나가야 한다는 압박감도 꽤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정도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를 향한 고민과 집중의 목적지가 잘하는 사람, 멋진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삶의 방향성, 목적성에 대한 경로를 한 번 더 생각해봤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10여 년 정도의 세월이 가는 동안 일상에서 삶에서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부딪힌 결과로 알게 된 깨달음이니 이보다 값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의 몇 년에 이르는 일부를 내어주고 또 한 챕터에의 마무리로서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니까.
요즈음에도 생각한다. 이 깨달음이 온전한 것일까?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 가치관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때의 열정이 과했던 나머지 그때의 생각과 기준대로 사는 것이 지금에의 나에겐 맞지 않다. 그때와 같은 열정으로 계속해서 살아가기엔 많이 지쳤으며 좋은 평판을 이어 나아가야 하는 것에 매몰돼있는 삶은 그만큼 내 마음을 온전히 돌볼시간은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의 내가 그렇다.
젊고 참을성 많고 노력하는 젊은 직원들이 대부분 함께 하고 있다. 업무,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나지만 그 외에 분야에서는 흘러가는 데로 순리대로 되게끔 마음을 많이 놓은 상태다. 그것이 인간관계든 그 어떤 것이든지 말이다.
내 성향이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밝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내 감정을 누른다든지, 퇴근 이후에의 생활을 함께하고 공유한다던지 그런 것들도 하나의 문화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고 퇴근 이후에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다. 유일하게 나만 그런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업무 이외에 것에서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마 예전 같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술자리에 함께하고 먼저 다가가기 위해 내 마음보다 우선되어 상대의 기분을 살펴가며 더 좋은 관계가 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나의 경험에서 나온 평온함이 그들에겐 열정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것마저 방어하느라 대다수의 대세에 맞춰 내 진심이 아닌 연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사람들과 무미건조한 관계로 지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전만큼 관계에 신경 쓰지 않으며, 대신 대면하고 함께할 시간이 있을 때에 친절히 대하는 정도에 만족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해지면, 그것이 나의 상황때문이라면 혹여나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지,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가끔은 생각한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시절인연이 그런 거구나.'
과거 첫 직장생활을 할 때의 나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친구들과 만났더라면 더 친해지고 깊은 사이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지만 나는 이들이 소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들보다 더 소중한 가족들을 지키고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지만 아주 길지도, 아주 짧지도 않을 시간 동안 함께 부대끼며 지내게 될 이 시절에의 인연일 뿐 이것을 억지로 꾸려나갈 필요는 없겠구나.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