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느 날, 오후 2시에 고객과 미팅이 잡혔다. 미팅이 잡히고 나서, 사무실에서 미팅하는 곳까지 얼마나 걸릴지 찾아보았다. 대중교통을 타면 1시간 남짓, 택시를 타면 4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점심 먹고 사무실 앞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그럭저럭 도착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큰 문제가 없다면 제때 도착해서 미팅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이 분기 실적 마감하는 날이어서 일이 엄청 많았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시간 체크를 제대로 못 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10분 정도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그래도 지도에 나온 시간만큼만 걸린다면 미팅에 제때 도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목적지 거의 다 왔을 때 차가 엄청나게 막혔다. 택시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좀 더 일찍 출발할 걸'이라고 후회하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5분 정도 늦어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 늦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고객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한 가지 더 생겼다. 고객사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가 무척이나 복잡했던 것이다. 내 컴퓨터에 보안 프로그램을 깔고, 그 프로그램으로 보안 검사를 해서 만점을 받아야 컴퓨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것까지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지각했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급해졌다. 날씨가 쌀쌀했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보안 검사를 했다. 겨우겨우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출입 허가를 받아서 건물로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미팅을 시작한 것은 2시 30분이 넘어서였다.
안 좋은 일들이 이렇기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종종 있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택시를 탔더니, 하필이면 신호란 신호는 다 걸린다. 중요한 자료를 분명히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파일을 열어보니 저장이 안 되어 있다. 마감 시간 맞춰서 일을 잘 끝낸 줄 알았는데 일정을 잘못 확인해서 완전히 꼬여버린다. 왠지 이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에게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게 다 내가 운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일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는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풀릴 것이라고,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미팅하는 곳까지 가는 길은 하나도 안 막힐 것이다. 미팅하기로 한 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곧바로 회의실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준비한 대로만 잘 이야기하면 고객은 내 말을 다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완벽한 그림에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내 하루는 완전히 망가지게 된다. 이 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아담 그랜트는 <오리지널스> 1장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성공한 창시자들은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뛰어들고 보는 막무가내형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절벽의 끝에서 마지못해 조심조심 발을 딛고, 낙하 속도를 계산하고, 낙하산이 제대로 작동할지 세 번 정도 점검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절벽 바닥에 안전망을 설치한 후에야 뛰어내리는 사람들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아서 잘 된 게 아니다.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까지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이렇게 저렇게 고민해 보고 그에 대한 대비책까지 꼼꼼하게 짜놓는다. 그럼에도 '혹시 모르니' 한 단계, 두 단계 더 생각해 보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나는 나는 여태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러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완벽한 그림을 그렸더라도, 그대로 안 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그럴 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상상해보아야 한다. 이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