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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징쌤 Nov 23. 2023

1등 제품도 이 모양인데..

잘 되는 판 고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고객들은 우리 제품을 쓰다가 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메일을 보낸다. 뭐 이런 걸 물어보나 싶은 것에서부터 기술적으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하는 것들까지 내용도 제각각이다. 지금도 내 업무용 메일함에는 미처 답장하지 못한 메일들이 잔뜩 쌓여 있다. 쉬운 건 내가 바로 답하지만, 어려운 건 엔지니어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우리 제품은 매년 업계에서 1위를 다투고 있으니 분명 좋은 제품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많은 오류가 나고 문제가 생긴다. 우리 제품을 많이 쓰는 고객이든 적게 쓰든 고객이든 상관없이 다들 비슷한 문제나 오류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 질문들 하나하나에 답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비슷비슷하다. ROI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비효율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질문들을 하는 고객들을 욕하거나 싫어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내가 쓰는 물건에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답을 찾아서 해결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냅다 고객 센터에 전화부터 하는 편이니 말이다. 내가 고객 입장에서 무언가 문의를 했을 때 친절하고 빠르게 답변을 해주고, 문제가 손쉽게 해결되면 그 회사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반대로 고객 센터 상담원 목소리 한 번 들어보는 것부터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들다면 그 제품을 다시 거들떠보는 것조차 싫어진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상담사에게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30분 동안이나 반복해서 들었던 적도 있다. 고객들의 질문에 스트레스받고 답답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면 영업 사원으로서 고객의 질문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시 다잡아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 제품을 많이 쓰는 고객은 우리에게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하는 느낌이다. 일단 그들과 계약하는 것부터 어렵다. 아무래도 큰돈이 오고 가는 일이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과의 관계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 문제다. 이들은 거래 금액이 크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질문에 우리가 빨리빨리 답변해 주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엔지니어들이 직접 방문해서 오류를 바로잡아주는 경우도 흔하다. 사실 우리 엔지니어가 고객사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것은 유료 서비스인데, 큰 고객들은 돈을 많이 썼으니 이것마저도 무료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업 사원들은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고객과 웬만하면 직접 움직이기 싫어하는 엔지니어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지난 글에서 영업 사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잘 되는 판을 골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솔직히 잘 되고 있는 판을 고른 것 같다. 고객들은 비슷한 제품들을 주욱 늘어놓고는 1등-3등 정도의 제품들을 먼저 골라서 비교를 한다. 그보다 낮은 순위의 제품들이 여기에 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별한 인연이 있거나 그 업체에서 파는 다른 제품이 아주 뛰어나지 않다면 웬만해서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1등 제품을 팔고 있다는 것만 해도 남들보다는 훨씬 조건이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지는 않는다. 물건을 팔고 나면 뒤처리 하느라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팀장님은 1등 제품도 이 모양인데, 대체 5등, 6등 제품은 대체 어떻게 파는 거냐고 한숨을 쉬며 얘기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고객들의 질문을 대충 넘겨버릴 수도 없다. 고객이 기술 문의를 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우리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제품을 더 잘 쓰고 싶어 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하는데, 여기에도 그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내 전임자는 영업 사원의 전화기가 조용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 관심이 없어서 인연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의미니까. 그래서 좋은 영업 사원이 되려면 고객들의 질문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고객들이 질문을 더 많이 하도록 부추겨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질문들 속에서 고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콕 집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근데 왜 내 전화기는 오늘따라 조용하기만 한 걸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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