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꼬시가 먹고 싶은 날. 남편과 집 근처의 작은 횟집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세꼬시. 주종은 소주와 맥주.
세꼬시와 따뜻한 달걀찜을 주문하고 술잔을 기울인다.
묵은지와 함께 먹는 세꼬시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수다'. 이것이 오늘의 목적이다.
아이들 이야기, 회사 이야기, 주변 사람들 이야기 더불어 시국 얘기까지.
말은 할수록 는다고 수다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된다.
옛날엔 부모님이 나라 걱정을 하면 저런다고 뭐가 바뀌나.. 왜 오지랖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렇게 걱정하셨는지, 알 것 같다.
탈도 많고 사건 사고도 많은 요즘 마음이 참 무겁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괜찮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텐데.
생각하다 보니 또 술 한잔이 당긴다.
팔짱 끼고 집에 돌아오는 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오늘은 유독 대화가 잘 통해 수다가 계속 꼬리를 문다. 이럴 땐 2차로 대화의 자리를 이어간다.
편의점에 들러 요즘 좋아하는 맥주 4캔 구입. 아이들을 위한 핵짱셔요 젤리도 두 개 사고.
봉지를 리듬에 맞춰 덜렁덜렁 흔들며 천천히 집을 향해 걷는다.
오늘 밤도 남편과의 술 한잔과 수다로 즐거운 이 밤이 깊어갔다.
난 성격상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시끄러운 것도 싫고.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런 성격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반복된다면 나에겐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말이 참 많아진다.
어느 날부턴가 남편과 식사를 하고 반주라도 곁들인다면 두세 시간은 기본이 되어 버렸다.
매일 거의 같은 일상이므로 특별히 할 말이 있지는 않다.
아이들이 크고 외부활동이 많아지면서 밥상엔 남편과 나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딱히 쓸데 있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므로 식사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시간이 아깝게 여겨지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해야 할 다른 일들이 생각나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또한 저녁식사라면 난 얼른 정리를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에너지 고갈을 목전에 둔 내가 슬슬 짜증이 치밀 때가 이때다.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들어야 할 말도 많고 해줘야 할 말도 많고, 그런 이유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이제 아이들은 같이 밥 먹을 시간이 거의 없고 남편과 나, 둘만 남자 식사 시간의 소중함과 즐거움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사' 보다는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나만의 소중한 시간으로.
나는 그렇게 남편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과 그 중요성을 내던진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이 중요했고 나의 할 일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점점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의 사이클이 완전히 다르게 구축되면서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챙겼지만 남편에게는 소홀해졌다. 이것도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했구나 하는 반성이 든다.
부부간에는 살면서 대화가 가장 중요한데 왜 그걸 놓쳤을까.
평탄하게 오랜 시간 동안 늘 다정하고 화목하기만 한 부부가 어디 있을까 마는 우리 집은 냉전기간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둘 다 동갑에 한 고집들 하는 성격이라 더더욱 양보란 없었고,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타입들이라 더욱 그러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쩌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친구의 말에 울림이 있었다. 친구는 매주 월요일이면 남편과 같이 저녁에 술을 마신다고 했다.
이벤트처럼 월요일이면 좋은 안주를 마련해 두고 남편과 함께 술을 마시며 주말의 노고를 서로 위로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딸이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딸이 집에 돌아와 있는 주말이 바쁘다) 전에도 들었었던 말인데 그날따라 갑자기 내 마음에 확 와닿았다. 아! 내가 놓친 게 그것이었나.
생각을 바꿨다. 일주일 중 적어도 하루는 같이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 간신히 지켜낸 20년의 결혼생활이다. 또한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이들이 불안해지고, 거칠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서로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묻기도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도 하고 해서 모처럼의 별식을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밥 하기 싫다고 외식을 종용하기도 하면서 되도록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남편은 술을 참 좋아하는 애주가에 속한다. 당연히 술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가끔은 같이 술 쇼핑을 가기도 하고 신제품이 나오면, 또는 처음 보는 술을 접하게 됐을 때 시음한다는 핑계로 안주를 마련해 한잔 할 때도 있다.
이렇게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점차 같이 시간들이 자연스럽고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 놀던 남편과 내가 서로 노력했고, 그에 대한 결실을 조금씩 맺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함께 보냈던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다시 기억해 냈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이가 들며 점점 몸이 약해지다 보니 '권태'가 우리에게 찾아왔었다보다.
아니, 나에게만 왔고 나의 차갑고 무심한 행동들 때문에 남편이 외롭고 힘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가 너무 지치고 내가 불쌍하다 여겨질 때 그래서 이기적으로 변해버렸을 때, 아마 상대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 마음에서 다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반드시 화목하게 지내야 하므로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쪽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앞으로도 한잔 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같이 나누는 시간을 주는 술 한잔, 참 행복하다.
부작용은 당연히 있다. 자꾸 군살이 붙고 식욕이 터진다. 아흐...
더 빡세게 운동을..... 하면 건강한 돼지가 될 듯하다.
돼지는 절대 싫어. 옷 사이즈 느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대책을 마련해야지.